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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미국 역사의 태동지 보스턴(1) - MIT와 하버드 대학 및 하버드 스쿠웨어의 도보 여행

제주큰동산 2013. 9. 20. 18:17

미합중국 역사의 태동지 보스턴


                                                       글과 사진 : 제주큰동산


1997년 10월 2일 워싱톤과 나이아가라의 일정을 마치고 우리 연수단은 17:40 경 버팔로에서 항공편으로 미국 역사의 시발점이요 세계 최고의 교육 도시임을 자랑하는 보스톤에 도착하였다. 숙소로 가기전 시내 버클리 음대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는 한인 식당(아리랑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숙소인 라마다에 여장을 풀었다. 숙소로 오는 도중 야간에 본 보스톤 정경들-북적대는 인파,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담배꽁초, 차량들의 새치기와 끼어들기, 복잡한 교통 등-은 워싱톤이나 버팔로에서 느꼈던 전원적이고 깨끗한 모습과는 판이하게 우리의 서울 등의 대도시와 별 차이가 없다는 인상을 받았다.


MIT와 하버드 대학 및 하버드 스쿠웨어의 도보 여행


10월 4일 오늘은 보스톤에서의 마지막 일정을 가지는 날이었다. 어제 우천 관계로 인하여 오늘은 바쁜 일정을 보내야 할 것 같다. 아침 출발에 앞서 월드컵 축구 한국대 아랍 에미리트와의 경기에서 3 : 0으로 승리했다는 승전보를 전해 듣고 우리 일행은 자축을 벌이면서 9:30분 경에 찰스강을 건너 켐브리지의 MIT에 도착하였다.

 

1861년에 건립된 MIT는 비록 미국의 8대 아이비리그에는 속하진 않으나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미국 제일의 공대임을 자부하고 있었다. 때마침 일요일이어서 학생들을 만나보지는 못하고 캠퍼스를 둘러보는 정도로 만족해야만 하였다. 캠퍼스의 각 건물마다 Darwin Hall, Newton Hall 등 유명한 과학자들의 이름을 따서 명칭을 부여되고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본관에는 학생들이 제작한 각 종 모형의 전함이 전시되고 있었는데 그 중에는 1964년에 제작되어 기증된 우리의 거북선도 자리를 같이하고 있어 매우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Newton Hall앞의 잔디밭 위에서 중국계의 어떤 여학생이 홀로 태극권을 연출하는 모습, MIT를 배경으로 영화 촬영을 위해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영화 스탭진들과 마주치기도 했고, MIT를 끼고 흐르는 찰스 강변을 따라 조깅을 하거나 로울러스케이팅 그리고 개를 끌고 산책을 즐기는 시민들의 모습이 매우 여유롭게 보였다.

 

        

 

MIT 학생이 세계 제일의 명문 공대생답게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는 일화들을 들려주고 있었다. 그 일례로 MIT 학생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술을 잘 마시기로 유명했다고 하는데, 이로 인하여 보스톤 경찰과 갈등을 빚어 충돌하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고 한다. 경찰차가 MIT 학생 단속을 위해 학교 주변에 상주하자 야밤을 틈타 학생들이 경찰차를 높이가 70M나 되는 본관 Dome 꼭대기 위에 얹어 놓아 세인들을 놀라게 한 일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고 한다. 나중에 알고보니 학생들이 밤중에 경찰차의 부속을 전부 분해하여 Dome위에다 다시 조립해 놓은 것이라고 한다. 또 MIT 학생들이 하버드 대학과의 합병 반대를 외치며 데모를 벌인 바 있었는데 경찰이 완전히 그들을 포위하여 지치기를 기다리자 학생들은 소형 무인 비행기와 헬기 등을 만들어 이를 조작하여 하늘로부터 데모하는 학생들에게 먹거리를 공수하였다고 한다. 이를 본 미국인들이 역시 ‘MIT 학생들이야’하면서 그들의 뛰어난 재능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고들 한다.

 

MIT를 둘러본 후 우리 일행은 10시 20분 경 미국 역대 6명의 대통령과 34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였으며 현재 미국을 이끌어 가는 최고의 명문임을 자랑하는 하버드로 향했다. 현재 하버드에서는 명문 공대인 MIT와의 합병을 10년 계획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계획에 대하여 하버드 측에서는 학생들은 찬성하는데 반하여 교수들은 이를 싫어하고, 반면에 MIT 측에서는 교수들은 찬성하는데 학생들이 반대하는 입장이란다. 이 계획이 성사될지는 아직 미지수이나 만약에 합병이 이루어진다면 하버드는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대학으로 발돋움하게 될 것이다.

  

 

하버드 대학 캠퍼스는 우리나라의 대학처럼 캠퍼스가 한 자리에 조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버드야드의 일반 건물과 함께 흩어져 섞여 있었다. 건물은 MIT처럼 현대식 빌딩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 대부분 학생들이 기거하면서 공부할 수 있도록 초창기(1700년대~1800년대) 양식으로 지어진 2~3층 규모의 조그만 건물이 담쟁이로 뒤덮여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고, 최근에 들어와서야 현대식 건물로 자연과학 센터 정도가 건립된 것이 고작일 정도로 규모는 그다지 크지는 않았다.

 

하지만 유서가 깊은 곳들이 많아 자신이 하버드생이라 생각하고 천천히 역사를 음미하면서 다니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게 된다. 하버드 야드에 들어서면서 대학가 주변을 살펴보면서 하버드 학생들이 왜 ‘공부벌레’란 별명을 갖게 되었는지, 또 왜 공부를 잘 할 수밖에 없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보스턴 당국은 면학 분위기 조성을 위하여 이 일대에는 당구장이나 술집과 같은 유흥업소를 아예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고 했다. 이는 신촌 일대를 비롯한 우리나라 대학가 주변이 온통 유흥업소로 차 있는 것과는 대조를 이루는 모습이었다. 이곳 주민들과 점포 주인들은 이 때문에 벌이는 시원치는 않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명문 하버드생을 길러내고 있다는 자부심이 대단하였고, 이 곳 서점이나 점포마다 지금은 미국의 저명인사나 유명한 작가가 된 인물들이 학생 시절에 남긴 사인 등을 자랑스럽게 걸어두고 있었다.

 

하버드의 설립은 존 하버드(John Harvard) 목사가 1636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플리머스에 상륙한 102명중에서 12명을 뽑아 Harvard Church에서 목사 양성을 위하여 신학교로 출발한 것이 시초였다고 한다. 하버드 정문을 지나면 하버드 신입생들의 기숙사인 가장 오래된 건물들이 나타난다. 조지 워싱톤이 그의 추종자들과 함께 영국군과 대항했던 곳이 여기다. 여기서 좌측으로 가면 1764년에 재건된 하버드 홀(Harvard Hall)이 있고 그 옆의 홀리스 홀(Hollis Hall) 앞에는 움푹 패인 곳이 있는데 이는 학생들이 실수로 실험용 포탄을 넣어 폭발하는 바람에 생긴 자국이라고 한다.

 

 

우리는 존 하버드(John Harvard) 목사의 동상을 지나서 뉴야드(New Yard)에 들어섰다. 여기에는 유니버시티 홀과 우리에게도 이미 ‘하버드의 공부벌레들’로 잘 알려져 있었던 법대생들의 도서관(The Harry Elkins Widener Memorial Library)이 있었다. 특히 이 도서관은 대학 부설 도서관으로서는 세계 최고의 규모를 가지고 있는데, 이 도서관에는 수영을 못하면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를 기부한 위데너는 그의 어머니가 타이타닉호 침몰 사건때 수영을 하지 못한 이유로 아들이 익사한 일이 있은 후에 기부하면서 붙인 유일한 조건이기 때문이었다. 도서관 내부를 보고자 했으나 학생들에게 방해가 된다하여 외부인 출입금지 팻말이 붙어 있어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이 도서관 건물은 하버드 내에서도 몇 안되는 대리석으로 건축물이었는데 라틴 글자로 1864년에(MCMXIV) 건축되었다고 새겨져 있었다.

 MIT가 대학 건물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과학자의 이름을 따서 기념관을 지었다고 한다면, 하버드 대학 건물은 하버드가 배출한 유명 인사의 이름을 따서 기념관 명칭을 지었다. 예컨대 도서관을 비롯한 기숙사 및 각 종 건물에 롱펠로우, 로빈슨 등의 이름을 붙인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는 3년에 한 번 전 미국 대학에 대한 평가를 실시하여 순위를 메기고 있는데 그 평가 기준에는 동네 주민들 의식과 생활수준까지 평가대상에 들어간다고 하였다. 하버드의 학생 수는 28,000여 명인데 비하여 교수와 임직원의 수가 무려 36,000여 명이나 되어 교수와 학생의 비율이 1:1 또는 2:1로 교수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각 지로부터 1년에 들어오는 기부금 액수도 15억~18억$에 달한다고 하니 그 규모가 놀라웠다. 또 미국의 보수 상류층들은 자기 집안에서 몇 대에 걸쳐 많은 하버드 출신자를 배출했는가를 자랑하면서 이를 긍지로 삼는다고 했다.

 

하버드에서는 신입생이 입학하기 전에 2개월간 교내 기숙사에서 기거하며 선배들로부터 사전 트레이닝을 받는 하우스 제도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은 사전에 탈락되고 80% 정도가 입학하게 되는데 졸업시에는 그중에서도 탈락자가 많이 발생하여 실제 졸업생은 입학 당시의 학생 수의 60% 정도라고 했다. 또 졸업할 때까지 혹독한 공부를 이겨내지 못하여 매년 자살 시도하는 학생만도 300여 명에 달한다고 하니 이를 보더라도 가히 하버드가 어떤 학교인가를 알 수 있겠다. 이밖에 하버드 캠퍼스 내에는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건물과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하버드 스쿠웨어는 보스턴 시내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지닌 곳이었다. 한마디로 젊음과 자유, 멋과 낭만이 넘쳐흐르는 곳이었다. 거리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사람들, 체스를 즐기는 사람, 노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독서를 즐기는 사람 등등 수 많은 인파가 즐거움을 만끽하는 거리였다. 특히 주말에는 하버드생, 보스톤 시민, 여행객들로 인하여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하버드 대학과 하버드 스쿠웨어 도보여행을 마친 후 우리 일행은 보스톤에 처음 도착한 날 저녁 식사를 가졌던 아리랑 식당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는데 거기서 마침 한국에서 유학온 아르바이트 여학생을 만났다. 그 학생은 이화여대 작곡과 출신으로 보스톤 대학에서 대학원 과정을 밟고 있다고 하였는데 이제 미국에 온지 1개월이 되었으며 아르바이트는 오늘 처음 시작하는 것이라 했다. 생전 힘든 일이라고는 해보지 않은 듯 아직 일이 서툴러 매우 당황해 하는 것을 보고 열심히 살라고 격려해 주고 우리 일행은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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