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절 군현시대의 탐라(3) - 취락의 발달
2. 취락의 발달
제주도 일원에 걸쳐서 현재의 취락 분포와 같은 윤곽은 언제 완성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고려 시대에 와서 제주도의 단순한 개별적인 자연부락들은 중앙 집권화에 따라 종횡으로 행정적인 조직이 이루어져 갔다.
이 시기에 이루어진 행정 구역의 최하부 단위인 縣村은 대개 제주를 중심으로 한라산 북쪽 해안가에 집중 분포되었다. 이 시기의 현촌 중 귀일, 고내, 애월, 곽지, 귀덕, 명월, 신촌, 함덕, 김녕, 토산, 호촌, 홍로, 예래, 차귀 등은
임해입지의 취락들이다.
고려조의 주요 포구들은 縣村制 이전에 이미 형성되어 있었는데 이러한 浦村의 예를 살피면 행정 조직화해 가는 과정에서 설치된 고려 때의 현촌들과 그 명칭이 중복되는 경우가 많다. 명월포, 애월포, 김녕포, 귀일포, 고내포, 함덕포, 서귀포, 토산포, 예래포 등이 그 예이다. 이외에 浦村으로서 현촌으로 되지 않은 곳으로는 북포(현재 화북 포구), 도두리포, 조천포 등이 있다.
이들 현촌과 포촌은 고려 말 잦은 왜구의 침입으로 전략적으로 중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방어를 위한 또 다른 일종의 鎭聚落과 같은 기능이 부여되기도 하여 이 곳에 군대를 주둔시켜 외적방어에 임하도록 하였다. 조천, 김녕, 도근포, 애월, 차귀, 명월, 서귀, 오조 등은 점차 주요한 鎭聚落으로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중산간 지대에 山村의 출현은 목축과 관련이 깊다. 제주도에 있어서 목축의 확대는 고려 후기 원의 침입과 더불어 군마의 사육이 강요되면서 부터이다. 즉 원은 충렬왕 2년(《고려사》세가편에는 충렬왕 2년으로, 지리지에는
충렬왕 3년으로 기록됨)에 수산평에 목마장을 설치하여 牧子를 두어 소, 말, 양, 낙타 등의 가축을 사육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조선시대에 이르러 10군데의 관설목장 설치로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소규모의 취락들이 중산간 지대에 출현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 참고문헌
① 濟州道, 『濟州道誌』第1卷, 1993.
② 吳洪晳, <濟州道의 聚落에 關한 地理學的 硏究>, 創音印刷公社, 19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