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큰동산 역사뜨락/한국근현대사

[스크랩] 조선족의 눈물(1996년)과 뒷얘기

제주큰동산 2007. 8. 8. 00:57

 

 

 

   "조선족의 눈물"


  대대로 살던 고향땅을 등지고 떠나는 마음은 어떠했을까. 허기진 배를 참지 못해 떠나는 마음은 어떠했을까. 정치적 탄압을 피해 망명길을 떠나는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렇게, 눈물 참으며 떠난 우리 할아버지들은 우리들은, 중국 지주의 모멸 속에서, 허허로운 만주벌판에서 거친 땅을 일구며 살아왔다. 이 속에서도 조국 광복을 위해 피흘리며 살아왔고, 우리 이름과 우리 글을 지키며 살아왔고, 우리  옷을 입고 살아왔다. 우뚝 솟은 백두의  기상과 출렁이는 천지의 푸름을 가슴에 담고 살아왔다. 누구보다 겨레다운 모습으로 살아왔다.


  그런데, 당신들은 왜 우리를 버리는가. 당신들은 왜 우리를 값싼 노동력으로만 보는가. 자본주의사회는 민족보다 돈을 더 중시하는가. 당신들은 왜 우리를 조선족(朝鮮族)이라 하는가. 당신들은 스스로를 조선족이라 하지 않으면서, 당신들은 왜 이민족(異民族)이 우리를 부르듯 하는가. 미국의 교포는 한인(韓人)이라 하면서, 왜 우리에겐 조선족 조선족 하는가. 미국 교포는 이중 국적을 인정하면서 우리는 왜, 왜 불법 체류자로 잡아가고 추방하는가. 미국 교포는시의원이 되었다고, 연방 의원이 되었다고 보도하면서, 버젓이 자치주까지 갖고 있는 우리의 떳떳한 모습은 왜 알리지 않는가.


  필립 재슨이라 이름 바꾸고 미국 여자와 산 서재필을 몇 달 간 연재할 줄을, 이완용이 회장인 독립협회에서 서재필이 주간한 독립신문 창간일을 신문의 날로 정하고 좋아할 줄을, 서재필의 달을 정해 놓고 기념사업 벌일 줄을, 홍범도와 김좌진의 후예인 우리는 몰랐었구나. 봉오동에서, 청산리에서, 만주에서 우리는 몰랐었구나.


  그리운 조국이, 그리운 핏줄이 나만의 짝사랑이었구나. 남루한 내 몰골이 이제야 부끄러움인줄 알겠구나. 기회주의자로 살지 못한 어리석은 조선족임을 깨우쳐 주는 당신들 앞에서, 우리의 참았던 눈물은, 이 가을 은행잎만큼이나 선명히 떨어지는구나.


                           - 아기장수. 1996년 11월 23일. 매일신문 -

 

 

   위 아래의 글은 조국을 그토록 사랑하시는 재미동포님을 원망하는 것이 아님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오해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 와서 반미, 반일 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진실이 가려지고 왜곡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저는 친일파 명단이 더 자세히 온천하에 공개되기를 바라지만,  그 후손들에게  곱지않은 시선을 보내는 것은 반대합니다.  

 

 

 

  저는 조선일보 구독자이기도 합니다.  조선일보의 편집 방향이 좋을 때도 있고 싫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좋은 점이 더 많으니까 여태껏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1996년 위의 글을 쓰던 해 조선일보는 유길준 서재필 등 독립협회 인간들을 끊임없이 연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잘못은 숨기고 공만 추켜 세우고 있었습니다. 아기장수는 이것이 싫었습니다.

 

 개화파인 독립협회의 다수는 겉보기에는 조선의 독립을 위하는 척했지만 실상은 조선을 청나라에서 분리 독립시켜 놓고 일본 미국 등의 식민지가 되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백과사전에서 독립협회를 찾아 보시면 매국노들의 이름이 그대로 보일 겁니다.  영은문도 좋은 문은 아니지만, 독립협회가 새로 만든 독립문도 좋을 것은 없습니다. 그 문을 만들고 나서  독립문을 그린 도자기를  친일파 박정양은 이등박문에게 바쳤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서재필이 주간한, 독립협회의 독립 신문은 미국의 자본으로 만들었습니다. 당시 친일과 친미는 한패거리였습니다. 경술 국치도 일본만의 힘은 아닙니다. 미국을 위시한 서구 열강들의 비호 아래 자행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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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글 '조선족의 눈물' 원고를 신문사로 보냈습니다. 편집실에서 실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회의 중이라고 했습니다. 왜 문제가 되느냐고 물으니 다음 밑줄 친 부분이 곤란한 내용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필립 재슨이라 이름 바꾸고 미국 여자와 산 서재필을 몇 달 간 연재할 줄을, 이완용이 회장인 독립협회에서 서재필이 주간한 독립신문 창간일을 신문의 날로 정하고 좋아할 줄을, 서재필의 달을 정해 놓고 기념사업 벌일 줄을,

 

특히 이 중 신문의 날을 비판하는 것은 전체 신문사를 매도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 수정해 달라고 알려 왔습니다. 수정할 마음도 없고 수정할 시간도 없으니 실으시든지 마시든지 알아서 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했지요.  이러다가 개인 칼럼은 신문사의 공식 입장과는 다르고, 이 칼럼의 책임은 필자에게 있으니 그냥 싣기로 결정했다고 다시 전하더군요. 한편 특정의 구독자가  싫어할 수도 있는 저의 졸필을 편집실에서 지지해 준 분이나 실어 주는 매일신문사가 고마웠습니다.

 

  그래도 은근히 화가 났습니다. '에라이 모르겠다. 한 번 더 쓰자'. 그래서 <개화와 세계화>란 제목으로 비슷한 내용을 한 번 더 썼습니다. 개화파 인물명들을 '김X균, 서X필, 유X준,이X용'으로 표기해 원고를 보냈습니다. 왜 이렇게 썼느냐고 하던군요. 나쁜 사람이니까요 하니까 웃으면서 고쳐 달라 하더군요. 그래서 '김O균, 서O필, 유O균,이O용'이라 수정해서 원고를 보냈지요. 아마 담당자님은 화 났을 겁니다.  나중에 신문을 펼쳐 보니, 독자들이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김옥균, 서재필, 유길준,이완용', 온전한 이름으로  수정해서 실어 주었더군요. 그리고 '독자들로부터 항의 전화를 받고 있다'고 전해 주면서도 '항의 전화는 독자들이 보고 있다는 증거 아니냐'면서 저를 감싸 주신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은 아직 변치 않고 있습니다.

 

 

 여하튼 위의 글 발표 이후, 중국동포에 대한 시각을 달리해야 한다는 기사들이 중앙일간지에서도 보이기도 했습니다마는 개화파를 지지하는 계열들은 기분 별로였겠지요. 

 

 아직도 학교 현장의 국사와 국어교과서에는 이 개화파들을 미화하고 있습니다. 분명 이들의 공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체를 바로 보아야 합니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일본 시가 형식인 7.5조라는 것을 알면서도

    왜  전통시라 하는지,  

 

    누천 년 이어온 민족을 미개족으로 전락시켜 버리는

   '개화기'란 말을 왜 부끄럼 없이 쓰는지,

 

    왜 2천 년 민족사만 가르치는지,

 

    우리의 적은 누구인지. 

 

 

 

 

               지지하시든 반대하시든

               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아기장수는 '우리'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함께'라는 말도 좋아합니다.

               적도 '우리'입니다. 적을 꽃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4339. 2. 28. 아기장수 삼가 올림

 

출처 : 조선족의 눈물(1996년)과 뒷얘기
글쓴이 : 아기장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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