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대영 박물관 속 `동해` 와 `일본해`, 그리고 한국과 일본.
약 한 달간의 유럽 여행 속에서 '대한민국' 이 아닌 곳에서 '대한민국' 을 느끼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런 중에서도 문득 문득 내가 한국인임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 있었다. 피자를 먹으면서 열무 김치가 땡길 때, TV 를 틀어 놓고 무심코 11번을 틀 때, 융프라우요흐에서 먹은 신라면이 미친 듯이 맛있을 때....그리고 유럽 속에서 '대한민국' 의 이미지를 보았을 때.
이 카테고리는 한 달간 유럽에서 느낀 '대한민국' 의 모습을 가감없이 적어나가기 위해 만든 곳이다. 짧은 시간이기에 많이 배우고 느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내 스스로 생각한바를 적어나간다. 첫번째 이야기는 바로 "대영 박물관" 속 한국과 일본, 그리고 '동해' 와 '일본해' 에 관한 이야기다.
[▲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인 대영 박물관]
바티칸 시국의 바티칸 박물관,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영국의 대영 박물관은 고대 및 중세의 공예품들과 미술품들을 전시해 놓은 세계 최고의 박물관으로써 '신사의 나라' 영국의 자랑하는 지성과 예술, 문화의 집결지다. 300년에 가까운 시간 속에서 겉모습은 낡아가고 있으나 그 속의 전시품들은 더욱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는 이 곳은 유럽 전체를 통틀어서도 가장 가치있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장소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항간에서는 대영박물관이 지니고 있는 지성의 이면에 감추어진 침략과 약탈의 문화를 들추어 내기도 하지만 그러한 논쟁이 무의미 할 정도로 대영박물관의 아성은 영국 뿐 아니라 유럽, 더 나아가 세계 속에서 여전히 견고하다. "영국에 들렀을 때 대영 박물관을 들르지 않는 것은 유럽의 역사를 거부하는 것이다." 라는 한 여행객의 충고가 새삼 떠오르는 순간이다.
이렇듯 세계 문화의 '집결지' 답게 대영 박물관 속에는 한,중,일 동양 3국의 특별 전시관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이 중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바로 '한국관' 과 '일본관' 에 관한 이야기다.
대영 박물관 한국관에 발을 들여 놓으면 가장 먼저 드는 느낌은 바로 '시원' 하다는 것이다. 바로 여러 전시관과는 달리 에어컨을 틀어 놓았기 때문인데 이는 한국관만 특별하게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관에 전시한 전통 가옥의 나무가 더운 기운 때문에 빨리 상하는 것을 방지하려는 박물관 측의 배려다. 그런데 이처럼 세심한 배려가 미치는 전시품들을 제치고 눈에 띄는 것은 바로 한 장의 지도다.
한국관에 들어서자마자, 또는 나갈 때에 관광객들이 한 번 쯤 보고 가는 것이 바로 이 지도인데 이 지도를 보면 특이한 점이 바로 있다. 바로 전 세계지도 97%가 사용한다는 '일본해' 가 아니라 'East Sea' 즉, 동해 표기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관이니 '동해' 표기를 사용하는 것이 당연한 듯 보일 수도 있지만 대영 박물관 자체가 지니고 있는 파급력을 생각할 때 이러한 표기는 가볍게 여길만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일본관에서는 동해를 어떻게 표기하고 있을까.
위의 지도는 바로 일본관에 비치되어 있는 지도인데 분쟁 지역임을 의식한 듯 '일본해' 라고 명시되어 있지 않다. 한국관에서 분명히 '동해' 라고 표기하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의 상황이다. 즉, 대영 박물관 속의 이러한 상황을 잘만 이용한다면 '동해' 와 '일본해' 표기 전쟁에서 상당히 좋은 홍보 효과를 맞이할 수도 있다는 셈이다.
실제로 연간 500~600만명이 발을 들여 놓는 대영박물관의 파급력은 엄청난 것으로 '세계 문화의 유산' 을 한 몸에 지니고 있는 박물관 자체의 무게감은 결코 우습게 볼 만한 것이 아니다. 한참 '동해' 표기에 승리했다는 나름의 만족감으로 일본관을 둘러보고 있을 때 발견한 문제는 의외로 다른 곳에 있었다. 바로 '한국관' 과 '일본관' 에 발을 들여 놓는 관광객들의 수적 차이였다.
일본관은 한국관에 비해 훨씬 외진 곳에 위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관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그것은 비단 일본이 미국에 이은 세계 제 2의 강대국 때문만은 아닌 듯 싶었다. 오히려 일본은 자신들의 현재의 위치에 만족하지 않고 일본관 속에서 끊임없이 외국인들을 상대로 설명회를 열고, 직접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자신들의 문화를 알리는데 열중하고 있었다.
[▲ 일본관에서 설명을 듣고 참여해 보는 외국인들의 모습]
그 때문일까. 일본관에는 수 많은 외국인들로 꽤나 소란스러운데 반해, 한국관의 관광객은 대부분이 한국인이었고 소수의 외국인이 의자에 앉아 쉬고 있었을 뿐이었다. 문화를 창조하고, 역사를 주도하는 힘은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쪽의 차지다. 우리는 과연 문화의 힘을 얼마나 꿰뚫어 보고 있는 것일까. '동해' 에는 열광하면서 '동해' 를 어떻게 알려야 하는지에는 무관심 한 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은 아닐까.
일본의 지도에는 비록 '일본해' 가 적혀있지 않았지만 외국인들의 정신을 지배하는 것은 오히려 일본쪽이었다. 대영박물관 속 '동해' 표기에서 승리를 거뒀음에도 멀뚱히 앉아 관광객을 기다리는 우리와 비록 일본해 표기는 하지 않았지만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자신들의 문화의 힘을 보여주려 노력하는 일본. 과연 나중에 승리하는 쪽은 어느 쪽일까.
유리한 상황이 있으면 그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능동적으로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동해' 와 '일본해', '한국관' 과 '일본관', 한국과 일본.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대영 박물관' 속 양국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