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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큰동산
2008. 3. 15. 02:09
‘간도는 우리땅’ 증거 찾았다
[경향신문 2005.01.30]
18세기 이후 조선과 청의 국경을 나타내는 인공울타리(흙무더기나 돌무더기)의 흔적이 위성영상을 통해 백두산 천지 동남쪽에서 처음으로 확인됐다. 경향신문 뉴스메이커 간도특별기획취재팀은 최근 1m급 위성영상(2004년 6월12일 촬영)을 입수, 고지도 등을 참고해 양국간 경계를 추적한 결과 이같은 사실을 발견했다.

위상영상 전문 판독기업인 위아(주)는 “19세기말 등의 고지도와 비교한 결과 압록강과 송화강의 상류를 연결하는 토퇴와 석퇴 등 인공물의 윤곽이 1.5㎞ 이상 연결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이로써 그동안 중국측이 주장해온 압록강~두만강 국경 주장은 허위임이 드러났으며 1712년 백두산 정계비 건립 이후 계속된 300년간의 국경논란도 우리 측 주장이 설득력을 갖게 됐다.
특히 송화강의 지류인 토문강과 동쪽의 압록강 사이를 잇는 울타리가 양국간 국경선임이 밝혀짐에 따라 현재 연변조선족자치주에 속하는 간도 지역이 한국땅임도 입증된 셈이다.
인공울타리 흔적은 백두산 장군봉에서 내려오는 길을 따라 남쪽으로 향하다 꺾어져, 토문강의 마른 하천을 끼면서 동쪽으로 800m가량 이어지고 있다. 이후 600m 정도 불분명해진 선은 다시 300m가량 나타난다.
위성영상 판독 전문가인 이승연씨는 “지난해 중국 지안의 환도산성과 발해 상경 성곽을 위성영상을 통해 판독할 때에도 이런 띠가 나타났다”며 “영상 속에서는 작은 길처럼 보이지만 윤곽의 형태가 돌무더기 띠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울타리 흔적이 나타난 토문강은 위성영상에서 두만강이 아닌 송화강으로 흘러들어간다.
이씨는 “전체 지리를 살펴볼 수 있는 15m급 위성영상에서 토문강이 송화강으로 흘러들어감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간도문제 전문가인 노계현 전 창원대 총장(외교사)은 “정계비 건립 당시 양쪽의 강 물줄기를 경계로 했다는 역사적 기록이 있는 만큼 조선과 청의 국경이 압록강과 송화강이었음을 보여주는 이번 위성영상 판독결과는 역사적 사실과도 부합한다”고 밝혔다.
조선후기 국경사를 연구해온 경인교대 강석화 교수(사학)는 “위성영상을 직접 확인해보니 토문강과 압록강 사이를 돌무더기로 연결했다는 18, 19세기 당시 사서의 내용이 사실임이 드러났다”면서 “이번 확인이 앞으로 학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압록~두만강 국경’ 中주장 허위 입증
간도특별기획취재팀이 1m급 위성영상을 통해 확인한 압록강~토문강 사이 돌·흙무더기 띠의 흔적은 300년간 지속돼온 한국과 중국간 국경 및 간도 논쟁을 일거에 잠재울 중요한 발견이다.
위성 영상은 흔히 1m급, 5m급으로 표시한다. 1m급이란 화소 1개가 1㎡를 표현한다는 의미이다. 지상에 물체가 가로 세로 1m이상이면 어떤 물체인지 알아낼 수 있다.
압록강과 송화강 지류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만나는 중간에 울타리가 시작되고 있다.
1930년께 사라진 백두산 정계비가 출발점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울타리 흔적은 장군봉에서 내려가는 길과 평행으로 가느다랗게 나타난다. 서쪽편에 압록강을 끼고 남쪽으로 향하는 것이다. 남쪽으로 향하던 띠는 동쪽으로 갑자기 꺾어져 토문강 변을 따라간다. 위성영상 판독전문가인 위아(주) 이승연씨는 “위성영상과 1대 5만 지도, 그리고 수치고도데이터 등 3차원 영상을 통해 일단 울타리가 연결돼 있다는 흔적을 추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토문강은 역사에 기록된 것처럼 마른 천의 모습을 띠고 있다. 온존한 물줄기가 보일 때까지 동쪽으로 흐른다. 절벽처럼 오목한 형상으로 흙문을 들어서는 것과 같다해서 붙여진 토문강의 이름 유래도 위성영상에서 확인됐다.
이씨는 “위성영상에서도 이 강이 움푹 패어 들어간 것이 판독되고 있다”고 말했다. 토문강이 두만강의 다른 발음이라는 중국의 주장이 잘못됐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600m가량 띠가 없어진 것도 역사책에 나타난 내용 그대로다. 1712년 허량이 조정에 올린 보고서에 따르면 강이 분명한 곳은 울타리를 쌓지 않았다고 서술돼 있다. 위성영상에서처럼 뚜렷한 강줄기가 보여 울타리를 쌓을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곳을 지나 다시 울타리를 쌓았다는 보고서의 사실도 위성영상에 나타나고 있다.
1934년과 1939년 이곳을 직접 답사, 토퇴와 석퇴를 확인한 김득황 박사(간도연구가)는 “높이 1m이하, 폭 2∼3m의 돌무더기가 1.5㎞ 정도 이어져 있었다”고 설명했다.
돌무더기는 5∼6m 이어지다 다시 4m정도 띄워지며 계속 연결돼 있었다고 한다.
김박사는 “위쪽 마른 천에서 정계비까지 돌무더기를 따라 내려가는 길이 30분가량 걸렸다”면서 “험악한 지형이라 지금도 돌 울타리는 훼손되거나 없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울타리는 북한 현지 답사를 통해 완전한 확증을 얻을 수 있다. 백두산 천지로 가는 길 옆에 위치해 의외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지역으로 보인다.
1712년 백두산 정계비 건립으로 조선과 청, 양국의 국경을 확정지은 후 청의 대표인 목극등의 요구로 토퇴와 석퇴, 목책(나무울타리)을 쌓았다. 토문강이 마른 천이기 때문에 불분명한 경계를 확실하게 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이때부터 양국의 국경은 백두산 정계비와 울타리를 경계로 압록강과 토문강으로 굳어졌다.
하지만 국경분쟁은 정계비 비문에 나타난 토문강에 대한 해석을 두고 벌어졌다. 조선측은 토문강이 북쪽으로 흘러들어가는 송화강의 상류라는 사실을 주장했고, 청측은 토문강이 두만강의 중국식 발음으로 양국의 국경은 압록강과 두만강이라고 주장했다.
1885년 을유감계담판(국경회담) 당시 감계사인 이중하는 중국측 대표와 정계비를 직접 답사, 두 강의 물줄기 사이에 놓인 토퇴·석퇴를 확인했다. 돌무더기 띠의 확인으로 중국측이 계속 주장한 ‘압록강-두만강 국경설’이 역사적 사실과는 다르다는 점이 나타났다.
위성영상에서 두만강의 지류는 백두산 천지의 근처에도 닿지 못하고 있다. 또 토문강은 송화강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동위토문(東爲土門:동쪽은 토문강을 경계로 한다)’이라는 정계비 비문대로라면 현재 옌볜조선족자치주인 간도지역이 조선의 땅이었음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간도영유권 문제를 연구해온 포항공대 박선영 교수(중국 근·현대사)는 “한국·중국이 공동으로 현장을 답사, 역사적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호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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