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미심쩍은 "안중근(응칠) 역사"에 대하여

최두한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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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안중근 의사의 후손들이 대한민국에 많이 있을 줄로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지금은 그의 직계 후손은 대한민국에는 살고 있지 않다. 왜 그럴까? 일본인에게서 제1회 신문조서가 끝나고 보름이 지난서 피고인(安應七: 안중근)에 대한 제2회 신문조서(1909년 11월 14일; 관동도독부 감옥서)에서 이런 문답이 있었다. 문: 그대는 五歲와 二歲의 子息이 있는가. 답: 五歲의 子息은 있어도 나는 三年 以前에 집을 나왔으니까 二歲의 兒孩는 모른다. 여기서 안중근에겐 아들 둘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때 맏이는 5살이었으니 1904년생이고, 하나는 2살이었으니 1908년생이다. 바로 이 후자가 안준생(安俊生)이다. 그 아들이 미국에 살고 있는 안웅호(安雄浩)씨다. 그분이나마 편안하게 사시도록 더 이상 캐묻고 싶지 않다. 단지 그 직계후손이 한반도에는 살고 잇지 않다는 것만을 알고자 했을 뿐이다. 그리고 안중근 의사는 위의 신문조서에서, 또 <안응칠 역사>에서 중국에 갔다는 내용에 대해 그 목적이 무엇인지를 한 말이 있다. 문: 그대는 上海 및 芝부(그물망四 아래 不)에 갔었는가. 답: 只今으로부터 五年前에 갔었다. 문: 同所에는 무슨 일로 갔었는가. 답: 遊覽次 갔었다. 여기서 안중근은 우리가 통상 말하는 중국에 간 적이 있으며, 그것도 강소성 상해와 산동성 지부에 갔었으며, 그것인 시기가 5년전이라면 적어도 1904년 이전이 된다. 그런데 <안응칠 역사>에서는 진남포에서 강소성 상해로 갔다는 기록에는 p.99에는 1905년이다. 이미 1년전부터 중국땅에 있었다는 말이다. 이 말은 안중근 의사가 중국(본디 조선)이라는 그곳에 살고 있었던 사람이라야 가능한 말이 된다. 그리고 그곳에 간 목적이 유람차 갔다는 것이다. 한반도의 평안도 진남포에서 유람하러 강소성 상해와 산동성 지부로 여행을 갔다는 것이다. 통 큰 사람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가 쉽게 갈 수 있었던 그 평안도 진남포는 한반도가 아닌 것이다. 안중근 의사가 조선독립운동을 했었는데, 1904년 이전에 중국에 유람이나 했을까? 일본인에게 거짓말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안중근 의사의 행동으로 보아 단순한 유람은 아닌 것이다. 그것도 한반도에서 건너간 유람이 아니라, 바로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의 유람이었으며, 조선독립운동이었던 것이다. |
안중근 의사의 한문실력에 대하여 <안중근 의사 자서전>이 곧 <안응칠 역사>이다. 이 글은 "안중근의 옥중집필"이라고 했는데, 그 글은 "순한문"이다. |
안중근 의사의 출생지 - 고향에 대하여
우리는 애국지사 안중근 의사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고들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많은 사람들이 안중근 의사에 대해 잘 알고 있지 않는 것으로 이해한다. 나의 말을 좀더 신뢰성을 갖도록 하는 말 가운데는 일본인 中野泰雄이 지은 <일본의 지성이 본 安重根> 金永光 옮김, (慶雲出版社, 1984, p.236)에 이런 표현을 한 것이 있다.
"安의사의 行蹟과 生涯, 그리고 사상 등에 대해서 우리는 많이 알고 있는 듯 하지만, 기실 그렇지 못한 실정인 것이다. 특히 安의사의 저격으로부터 재판, 그리고 수감생활과 집행에 이르기까지의 행적에 관해서는 우리보다는 일본인들이 더 소상히 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글로 김영광씨가 안중근 의사에 대한 인식을 술회한 것에서 우리는 모르는 것이 많다는 생각이 더 든다. 그러나 어찌 이뿐이랴! 우리는 사실 그의 출생지부터 알지못하는 것을!
<<안중근 의사 자서전>>(안중근 의사 숭모회, 1979, p.17)이라는 <안응칠 역사(安應七歷史)>에는 안중근 자신이 그 자신이 태어난 사실을 언급해놓았다.
"1879년 기묘 7월 16일 대한국 황해도 해주부 수양산 아래 한 남아가 태어나니, 성은 안이요, 이름은 중근, 자는 응칠이라 하였다."
이 표현은 안중근 자신이 썼다는 표현으로 보기에는 미심쩍다. 자신을 제3자로 보고 쓴 글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글을 안의사 자신이 썼다고 인정하고, 다음 글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안중근 의사 공판기에 보면, 피고인(安應七) 제1회 신문조서(訊問調書)에서 질문과 답변하는 내용에는 전혀 다르다.
"住所는 韓國平安道平壤城外. 本籍地는 同所, 出生地는 同所."(<안중근의사 자서전>, 안중근 의사 숭모회, 1979. p.244)
위의 두 자료의 내용에는 안중근 의사의 출생지에 대해 행정구역을 보면, 황해도와 평안도, 해주부와 평양, 수양산 아래와 성외(城外)라고 하여 전혀 다른 말을 하였다. 이 두 가지의 지명에서 어느 한가지는 거짓일 것이다. 거짓이 아니라면, 무슨 의미, 행정구역의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안중근 의사의 출생지가 어느 것이 맞는지도 모르는데, 어찌 그 안중근 의사에 대해서 잘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백과사전><인물사전>에 모두 안의사는 "황해도 해주" 출신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인의 신문조서에 답할 때에 안중근 의사가 거짓말을 했겠는가?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거짓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렇다면 안중근 의사의 출생지는 어디가 옳다는 말인가? 안의사가 조서받으면서 말했던 "평안도 평양성외"라는 말도 옳다고 본다. 왜냐하면 산서성 서남부 평양부(平陽府) 해주(解州) 수양산(首陽山: 雷首山) 아래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곳이 평양(平壤: 平陽) 성외(城外)가 되고, 수양산하(首陽山下)가 된다. 이것은 백범 김구와 같은 경우이다. 김구와 안중근은 3살차이뿐이다.
어찌 안중근 자신이 일본인에게 이런 출생지 같은 것을 거짓으로 말함으로써 쓸데없는 불신을 받으려고 했겠는가?
나는 일단 한 치의 거짓없는 진술이라고 볼 때, 자신의 출생지는 산서성 서남부 평양부(平陽府) 해주(解州) 수양산(首陽山) 아래[下]가 된다. 그곳이 곧 황해도(黃海道) 해주부(海州府)이기도 하다. 그 지역을 때에 따라 도(道)의 개념이 바꾸어불렸던 것이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박은식(朴殷植)의 저서 <박은식전서>中에 적힌 인물고(人物考)에는 "安重根傳"이 있다.
"安重根은 韓國黃海道海州人이라. 海州는 背(북쪽)에 首山을 負하고, 前(남쪽)에 大海를 臨하여 一都會가 된다. 高麗時에 州人 崔沖, ... 本朝名儒李珥는 州西石潭에 卜居하였으니, 其山水를 愛함이라."(p.568)
여기서 석담(石潭)은 <신증 동국여지승람>권42 장련현(長連縣)에 보면,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있다.
"구월산(九月山 중턱에 있으며, ... 네모가 방정하고, 너비가 6자이며, 물 깊이를 알 수 없다. 가물때나 장마져도 언제나 한결같다.(石潭在九月山腰 ... 四陽方正廣六尺 水深不測 旱료(僚의 人변 대신에 삼水변)如一)"
이 구월산은 아사달산(阿斯達山)/궁홀산(弓忽山)/증산(甑山)/삼위산(三危山)이라고도 하며, 장련현 남쪽 10리에, 문화현 서쪽 10리에, 은률현 동쪽 10리에 있다고 했다. 이 설명은 곧 구월산을 중심으로 동쪽엔 문화현, 북쪽엔 장련현, 서쪽엔 은률현이 있다는 말이다.
또 이 은률현에 있다는 구월산 허리(=중턱)에는 고요연(高腰淵)이 있다고 했는데, 그 형상이 가마와 같으며, 그 전설이나, 설명이 석담(石潭)과도 같다.
그런데 진작 한반도 황해도에 구월산을 중심으로 지명들을 살펴보면 매우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 구월산은 해발 954m이며, 위치는 북위 38도30분, 동경 125도 15분에 있다. 이 산은 동쪽의 안악군과 서쪽의 은률군의 경계에 있고, 이 산을 중심으로 북쪽에 은률군, 북북쪽에 은률군의 관할이면서 이도면을 너머 장련면이 있고, 남쪽에는 안악군 서부 끝의 용진면/산천면/문무면을 거쳐야 문화면이 있다. 행정구역배치가 제대로 맞지 앟다는 말이다.
게다가 막상 해주에는 구월산이 아니고, 수양산(해발 899m)이 있으며, 위치는 북위 38도05분, 동경 125도44분이다. 이것은 박은식의 설명과도 다르다.
이 아사달 구월산은 단군임금이 말년에 신선이 되었다는 산인데, 수양산과 멀지 않는 곳에 있다는 말이며, 그것은 같은 하나의 산맥에 있음도 알 수 있다. 그것은 해주(海州 = 解州)라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으며, 북쪽의 수산(首山)이란 그 산은 중조산(中條山), 즉 중조산맥인데, 수양산(首陽山)은 하곡(河曲)인 영제(永濟)쪽의 뢰수산(雷首山)이고, 구월산(九月山)은 그 동쪽에 있는 구봉산(九峰山)이며, 남쪽으로 대해(大海)란 바로 황하를 말한다.
이렇게 박은식의 "안중근전"에서 그의 출생지에 관한 설명으로 찾으면, 바로 그곳이 평양성밖(平壤城外)이며, 바로 이런 것은 중원(中原)이란 특성에서 기인하며, 다른 이름으로 중국(中國)이요, 경기요, 기내요, 관내요, 관중이며, 신주(神州)이기 때문이며, 이곳에서 8도(八道)와 직접 통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다.
이런 사실은 한반도에서는 있을 수도 없는 지리적 관계이다. 그래서 지리적 특성을 잘 살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