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내가 본 日本人의 市民意識
내가 본 日本人의 市民意識
글 : 제주큰동산
1. 머리말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일본인의 시민의식은 권위에 대한 맹목적인 추앙심과 축소지향적이며 모방적인 성격을 지녔다고 생각하고 있다. 일본의 역사 과정은 오랫동안 봉건제도의 영향으로 군주와 귀족의 지배에 맹목적인 순종을 하여 왔으므로 민중의 일반적인 성향은 지배계급에 대한 복종을 순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영주와 무사계급은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형성했던 성향은 일반 민중이 권위와 집단에 대한 절대적 충성심과 적극적인 자기희생의 가치관을 형성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 신분제의 철폐 등을 통하여 점차 사민평등(四民平等)을 모색하였으나 구제도적인 의식의 상태가 쉽게 변하지는 않았다. 즉 근대 교육의 실시, 경제적 변화와 새로운 직업의 생성 과정을 통하여 현대와 같은 질서가 확립되었으나 과거부터 고착되어온 민중의식이 크게 변화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역사적 진행 과정에서 전래 문화의 활발한 수용 과정에서 형성된 모방성과 순종적인 국민성은 강제 개항에 성공한 서양 세력과의 접근 과정에서 여실히 보여 주었으며, 이것이 일본을 근대화시키는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동이 쉽지 않았던 주거지 중심의 생활 습관은 자연의 인위적인 조작과 축소 지향적인 정신으로 나타났으며, 이러한 정신은 20세기에서 간편하고 작은 것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구와 부합하여 세계적인 경제성장의 발판이 되기도 하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일본인의 시민의식은 바로 이러한 축소 지향적인 성향, 외래문화의 무조건적인 모방성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미 알려진 일반적인 일본인의 의식적 단편보다 또 다른 시민의식을 이번 일본의 현장을 탐방하면서 나름대로 보아온 점을 기술하여 보았다.
2. 현장(現場)에서의 시민 의식
가. 타인 존중의 정신과 친절 의식
일상 생활에서 스미마센(미안합니다)이라는 말은 보편화되어 있으며, 조금이라도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있을 때 어김없이 이 말을 사용하고 있었다. 아울러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자세를 엿볼 수 있었다. 줄서기가 생활화되어 있었으며, 계단이나 에스컬레이터에서는 반(半)을 비워서 한쪽 편으로 비켜서므로 바쁜 사람들이 빨리 나다닐 수 있도록 배려하는 모습에서 타인존중의 정신을 살펴 볼 수 있었다.
또한 현지에서 본 일본인에 대한 첫인상은 너무나 친절하고 인사를 잘 하였다. 서비스 업종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은 인사가 생활화되어 볼 때마다 인사를 반갑게 하여 인사가 서툰 우리를 당황하게 하였다. 연수 기간 중 화낸 모습의 일본인은 별로 보지 못하였고, 길을 묻고자 하면 자신이 갈 길도 포기하고 친절히 안내하였으며, 심지어는 우리의 목적지까지 직접 안내하여 길 묻는 우리를 미안하게 하였다.
나. 개인주의적 성향
우리 국민의 의식은 타인의 행위가 나와 상관이 없더라도 구경하고 간섭하고자 하나, 일본인은 철저하게 자기와 상관없는 일에는 관여하지도 않고 관심조차 가지지 않는 점을 보았다.
또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는 주변의 상황과 관계없이 자신의 일을 행하고 있었다. 길거리의 악사들(Street musician)은 구경꾼과 관계없이 열심히 연주하고 공공건물 뒤편의 어둠에서도 어린 여자 중학생들은 주변의 구경꾼과 상관없이 그룹댄싱에 열심이었으며, 심지어 여러 사람이 다니는 역(驛) 건물의 뒤편이나 전망이 괜찮은 곳은 어김없이 청춘남녀가 밀착한 상태에서 사랑을 확인하고 있었다. 이들은 주변 사람의 움직임에는 대개 관심이 없어 보였다.
특별히 주변을 관심 있게 훑어보는 사람도 별로 없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의 무표정하게 자신의 일만 하는 그런 성격을 지닌 것 같았다. 서민의 대중적인 교통수단인 지하철의 공간에서도 주변과 상관없이 자신의 일만 하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얼굴을 돌려 다른 사람을 관심 있게 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거리에서 광고지나 선물을 배부하여도 자신과 상관없으면 받을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이런 것으로 보아 그들은 상당히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것 같았다.
다. 철저한 직업 의식
자신의 일에 대한 강한 자부심과 주어진 역할을 철저히 완수해 낸다는 의식이 갖추어져 있었다. 횡단보도나 인도(人道)에 타일을 붙일 때도 타일의 간격을 자로 직접 재어서 폭을 확인하고 붙이는 노동자나 식당에서 신나게 흥과 기분을 내어서 자신의 일을 하는 요리사나, 거리에서 청소를 하는 청소부가 자기 앞에서 선전 광고지를 붙이는 사람을 보고도 묵묵히 떼어낼 뿐 아무런 금지 조치도 취하지 않음을 볼 때 철저한 직업의식을 찾아 볼 수 있었다. 매사에 대충 이라는 개념은 찾아 볼 수 없었고 원칙을 준수하는 생활이 바탕을 이루고 있었다.
라. 편리 위주의 자연환경 개선
일본인은 자연 상태를 즐기기보다 자신의 기호와 취향에 맞는 상태로 개조하여 생활하는 것을 즐기는 것 같았다. 하루 종일 도시를 헤매도 흙 한번 밟아 본적이 없고, 공원이 아니면 모두가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었다. 집집마다 놓여 있는 손바닥만한 화분과 그 속에 억제되어 있는 굴절된 소나무의 모습이 자연을 자신의 취향대로 지배하겠다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 같았으며, 공원이나 도시 주변에도 자연 상태의 모습을 간직한 것은 별로 보지 못하였다. 정원수는 모두 동그랗게 인공적으로 깎여져 있었으며 江둑은 모두 시멘트로 발라져 가파른 형상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오사카 성(城)은 외형은 성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나 내부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과거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모습은 그곳에서 상상할 수 없었으며 다만 기계적인 장치를 통하여 만나볼 수 있었다.
마. 절약 정신의 생활화.
일본의 국가적 부(富)와 경제력은 이미 세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나 실제 시민의 생활은 보기보다 훨씬 서민적이었다. 손님을 맞이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그들의 생활은 아주 검소하였으며 대다수 시민의 모습도 그러했다. 초등학교에서 학생의 모습은 우리와 비교할 때 절약이 아닌 초라함의 모습이었으며 도시의 교통수단인 지하철에서의 시민의 모습은 꽤나 초라해 보였다. 그래도 그들은 세계 경제대국이며 아시아 최강국이 아닌가. 도무지 꾸밈이나 사치의 흔적은 찾아 볼 수 없었으며 단지 생활에 꼭 필요한 것만 소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것은 재화를 소비할 때 현장에서 바로 계산해야하는 부가세 때문만은 아닐 것이고 생활에서 익혀온 근검 절약의 정신이 아니겠는가.
3. 맺음말
시민의식의 성립은 대개 오랜 역사적 경험에서 나온 경우가 많지만 단기간의 변화는 역시 교육의 힘이 크게 좌우한다고 보겠다.
일본이 근대화에 쉽게 성공하게된 것은 1872년 이래 전국적 근대 교육을 실시하여 널리 국민을 교화시켜온 결과이며 아울러 국제 사회에서 자신을 강조할 수 있는 특별한 자부심이 없었던 것이 자기를 쉽게 버리고 외래 문화를 자연스럽게 모방할 수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자라나는 청소년이 전통적인 의식과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의식사이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의 과제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전통적인 의식에서 찾아볼 수 있는 정신은 별로 없고 서구의 개인적이고 자유방임적인 의식은 젊은이에게 상당히 매력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그러한 흔적들이 곳곳에 보이고 있었다. 이것이 일본의 미래에 어떻게 작용할지는 아직 알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