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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고조기(高兆基) Re:書 雲 岩 鎭 : 高 兆 基 운암진에서짓다:평안남도 안주 근방에 있는 절경
제주큰동산
2013. 9. 20. 20:38
고조기(高兆基)
고조기(高兆基)는 고유의 아들로 최충이 개설한 9재학당에서 수학하고 예종 2년(1107)에 약관 19세로 문과에 급제한 후 남쪽 지방에 나아가 고을을 다스릴 때는 청백리로 이름을 날렸고 많은 옛 서적을 섭렵하고 역사를 연구하여 깊은 학문을 쌓았다. 한 때는 탐라 성주로 있다가 인종 7년(1129)에 侍御使가되어 조정의 기강을 세우는데 진력하였다. 인종 8년(1130)에 賀節使로 金나라에 다녀왔고, 李資謙의 무리들을 탄핵하는 상소문을 올렸다가 工部員外郞(工部의 정6품 벼슬)에 좌천되었으나 얼마 후 다시 복귀한 후 조정의 잘못을 들어 상소를 거듭하므로 예부낭중으로 전직되었고, 인종 13년(1135) 묘청의 난 때 金富軾의 보좌관으로 활약한 바 있으며, 1148년(의종 2년)에는 知貢擧를 역임하였고, 1149년(의종 3년)에는 政堂文學 參知政事가 되었다가 중서시랑평장사에 이르렀다. 특히 五言詩에 능하여 시집 3권을 저술하였다 하나 珍島江亭 등 6수만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으며, 제주시 아라동 2464번지에 있는 그의 묘역은 제주도 지방문화재 기념물 38호로 지정되었다.
● 참고문헌 ① 許興植, <選擧志選場의 分析-高麗禮部試登科錄 作成 관련하여->,『高麗科擧制度史硏究』, 一潮閣 ,1984,p. 250 . ② 康錫奎 , <耽羅-近代의 濟州鄕土敎育 >『康錫奎停年退任 記念論文』, 全南大學校 出版部 , 1994 . ③ 濟州道, 『濟州道誌』第一卷, 1993. ④ 濟州道, 『濟州道誌』上, 19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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