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큰동산 역사뜨락/제주도 향토사

[스크랩] 김수(金須) 장군 묘

제주큰동산 2013. 9. 20. 20:41

 

2010년 11월 14일 14:23  제주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 산124 산세미오름 기슭에 있는 김수(金須) 장군 묘

김수묘 추정되는 산새미오름 방묘는 2005년 9월 28일 도지정 문화재 제60-3호로 지정되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김수장군의 묘라고 하기도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광산김씨 문중에서는 김수 장군의 묘는 경기도 장단군 송남면 고장산(高張山)에 있었다고 하며,

현재 제주도에서는 입도조 묘역에 단을 세워 추모하고 있다.

 

 

김수 장군은 고려 후기의 문신이며, 아버지는 증문하평장사(贈門下平章事) 경량(鏡亮)이다.

 1255년(고종 42년) 夏6월 戊辰日에 추밀부사(樞密副使) 최온이 고시관(考試官)이 되고

판사재감사(判司宰監事) 김지대(金之岱)가 부고시관이 되어 진사(進士)를 선발(選拔)하였을 때

곽왕부 등을 급제(及第)시켰다(高麗史高宗紀 및 選擧誌).

 

 

 

公은 을묘과(乙卯科) 곽왕부 방하(榜下)에 문과(文科) 급제하여

원종 때 감찰어사를 거쳐 영암부사(靈巖副使)로 갔다.

 

 

 

1270년(원종12) 진도(珍島)에서 패한 삼별초(三別抄)가 제주에서 난(亂)을 일으키자

안찰사(按察俊) 권단의 명으로 2백명의 관군을 이끌고 제주(濟州)를 지키다가 11月3日 순절하였다.

동년(同年) 하(夏) 사월(四月) 임인일(壬寅日)에 영광부사 김수의 처(妻)에게

백미(白米) 십석(十石)을 하사(下賜)하여 수(須)의 전몰(戰歿)한 충절(忠節)을 표창(表彰)하였으며,

 

 

동년(同年) 동(冬) 십월(十月) 정유(丁酉)일에 왕이 조서(詔書)를 내려

제주를 수비(守備)하다가 전사(戰死)한 장군 고여림 및 영광부사 김수의 아들에게

관직(官職)을 초계상사(超階賞賜)하고 아들이 없으면

그의 부모(父母) 및 처(妻)에게 보상(補償)하라 하였다(高麗史高宗紀).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참지정사(參知政事) 집현전태학사(集賢殿

公은 담략(膽略)과 지략(智略)이 남보다 뛰어나서 고여림과 더불어 삼별초(三別抄)를 토벌(討伐)할 때

진두지휘(陣頭指揮)하다가 전몰(戰歿)하여 귀환(歸還)하지 못하였다(輿地勝覽).

 

 

配는 변한국대부인(卞韓國大夫人) 옥

참지정사(參知政事) 집현전태학사(集賢殿太學士) 판예부사(判禮部事)에 추증(追贈)된 

문하시중(門下侍中)에 누증(累贈)되었다. 문정공파조(文正公派祖) 태현(台鉉)의 아버지이시다.

 

 

配는 변한국대부인(卞韓國大夫人) 옥구고씨(沃溝高氏)

父 예빈경(禮賓卿) 정(?) 祖 동국시강학사(東宮侍講學士) 영중(瑩中)

曾祖 감찰어사(監察御史) 세재(世材) 外祖 대사성(大司成) 한림시강학사(翰林侍講學士) 조통(趙通)

(高宗丙戌二月十一生. 忠肅王 丁卯七月一日卒 壽百二歲, 1226∼1327)

 

 

묘(墓)는 장단군 송남면 고장산(高張山)에 있었는데

국토가 분단되어 향화(香火)를 받들지 못함을 한하여

1989년 4월 30일에 제주시에 설단(設壇)하였다.

 

 

100년의 세월이 흐른 후 그 증손 '김윤조'가 '신돈'의 화를 피해 망망대해를 건너와서

 은거(공민왕 17년 1368) 하게 되니 제주도 광산김씨 입도조가 된다.

 

 

100년의 세월이 흐른후에 그 증손 '김윤조'가 '신돈'의 화를 피해 망망대해를 건너와서

은거(공민왕 17년 1368) 하게 되니  제주도 광산김씨 입도조가 된다.

 

 

 

 

 

         참고자료 : 광산김씨 홈페이지

 

 

사진 : 김수(金須) 장군 묘, 제주큰동산, 2010.11.14.14:23, 제주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 산124 산세미오름 기슭

 

출처 : 제주큰동산
글쓴이 : 제주큰동산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