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제주 해녀 항일운동
제주의 해녀 항일운동
제주의 해녀들은 예로부터 수탈과 착취의 대상이었으며 1900년대 해녀들이 수확한 해산물에 대한 판로가 개척되면서 수탈과 노동력 착취 등의 폐단이 확대되었다. 이에 1920년 4월 해녀들은 권익보호를 위해 제주도해녀어업조합을 조직하였다. 그러나 해녀조합은 조합장을 제주도지사가 겸임하는 어용조합으로 변질되었으며 조합의 횡포가 날로 심해갔다.
그러던 중 1930년과 1931년 성산포와 하도리에서 조합이 경매가격을 하향 책정하는 횡포가 발생하자 1931년 6월 해녀들은 공동 투쟁을 모색하게 되었다. 이어 12월에 관제조합 반대, 수확물에 대한 가격 재평가 등의 요구 조건과 투쟁 방침을 결정하고 1932년 1월 7일 세화리 장날을 이용하여 시위를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이 후 1월 14일 세화리 장날을 기해 대규모 시위를 전개하였으며 제주도지사와 해녀대표가 담판하여 해녀들의 요구조건을 수용하기로 약속하였다. 그러나 일제는 사건의 조사와 함께 제주도내의 청년운동가들을 대대적으로 검거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를 저지하려는 해녀들의 시위가 일어났으나 1월 27일 종달리 해녀들의 시위를 끝으로 일제에 의해 진압되고 말았다.
이 항일운동은 연인원 17,130명 238회의 집회 및 시위를 전개한 대규모 투쟁으로 제주 3대 항일운동의 하나이다. 또한 우리나라 최대 어민운동이자 1930년대 최대의 항일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해녀들의 요구사항 일체의 지정판매를 절대 반대한다. 일체의 계약보증금은 생산자가 보관하도록 한다. 조합의 재정을 공개하라. 미성년자와 40세 이상의 해녀들에게는 해녀 조합비를 면제하도록 한다. 출가증은 무료로 내어 주어라. 질병이나 다른 이유로 입어를 못하는 자에게는 조합비를 면제시켜라. 총대는 마을별로 선출하도록 하라. 악덕 상인을 옹호하는 승전(升田) 서기를 즉각 면직시켜라. 도사(島司)의 조합장 겸직 반대. 일본 상인 배척 등
사진과 동영상 : 제주 해녀 항일운동, 제주큰동산, 2011.07.22.오후, 제주도 해녀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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