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한라장촉(漢拏壯囑)
1. 한라장촉(漢拏壯囑)
숙종28년(1702) 4월 15일 제작. 당시 제주도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과 주변 도서에 대한 지식을 알려 주고 있는 그림지도이다. 이 지도는 독립된 제주도 지도로는 매우 오래된 것 중의 하나다. 현대 지도는 북쪽을 지도의 위쪽에 놓는데, 이 지도는 남쪽을 위로 놓았다. 남쪽을 지도의 위쪽에 놓는 것은 과거의 지도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것으로 특히 제주도와 같은 섬 지방인 경우 본토인 한반도에서 바라보는 시점으로 그렸기 때문에 그런 경우가 많다.
먼저 제주도와 관련해서 삼읍의 경계가 시대에 따라 다소의 변동은 있었으나, 이 그림상으로는 제주목과 대정현이 판포(板浦), 제주목과 정의현은 용항포(龍項浦=하도리 창흥동과 종달리 지미봉 사이), 대정현과 정의현의 경우는 법한포(法閑浦)와 색수(塞水)의 중간 지점이 그 경계가 되고 있다.
삼읍관아(三邑官衙 : 제주목, 대정현, 정의현)의 위치와 9개 진(鎭)의 위치 즉, 화북진․조천진․별방진․수산진․서귀진․모슬진․차귀진․명월진․애월진의 소재지를 적색으로 표시하여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하였다. 그 외에 목장, 산악, 도로, 마을명, 하천뿐만 아니라, 80여 개의 포구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당시 포구의 분포를 짐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 그림에서 중요시하고 있는 것은 제주도가 섬이라는 지정학적 조건에 따른 주변 도서와의 관련 내용이다. 즉, 제주도를 중심으로 주변 도서를 24방위로 표시하여 그 대략적인 위치를 이 한 장의 그림으로 가늠할 수 있도록 하였다. 당시 육지 지역과의 유일한 교통수단이 선박임을 감안할 때, 이는 선박의 조난 혹은 이국선(異國船)의 표도시(漂到時) 매우 유용하게 활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지도에서 특징적인 점은 중산간 지대에 설치되어 있었던 목마장이다. 목마장의 경계이기도 했던 돌담(잣)을 점선으로 그려 넣었으며 각 소장의 이름도 적어 넣었다.
그리고 육지 지역과의 주요 관문 중의 하나인 해남까지 970리,
동쪽 일본국까지 2,000여리,
병(丙:11시)의 방향 여인국(女人國)까지 8,000여리,
오(午:12시)의 방향 유구국(琉球國)까지 5,000여리,
정(丁:13시)의 방향 안남국(安南國)까지 17,000여리,
미(未:14시)의 방향 섬라국(暹羅國) 점성(占城)까지 10,000여리,
곤(坤:15시)의 방향 영파부(寧波府)까지 8,000리,
신(申:16시)의 방향 소항주(蘇抗州)까지 7,000리,
경(庚:17시)의 방향 양주(楊州)까지 7,000리,
신(辛:19시)의 방향 산동성(山東省)까지 10,000리,
술(戌:20시)의 방향 중국 청주(靑州)까지 10,000여리로 기재해 거리의 원근을 알아볼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외국에 대한 인식은 중국을 통해 입수한 지식과 제주로 표류했던 외국인을 통해 전해들은 것으로, 당시 서양과 달리 먼 거리를 항해하는 게 제한되어 있던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다.
한편, 그림 하단부에 기록해 놓은 내용을 보면, 지방관 제주판관(濟州判官) 이태현(李泰顯)과 호위병격의 군관호군(軍官護軍) 이우해(李迂楷) 등 11員, 심약(審藥, 약재를 심사 감독하는 관원) 윤기은(尹起殷)이라 기재하였다. 제주도의 전체 둘레 480리, 대로(大路)의 둘레 378리, 동서 길이 170리, 남북 길이 73리로 나타나 있다. 많은 옛 지도들은 이전 시기 지도들을 베껴내는 경우가 많은데, 한라장촉은 당시 실정과 정보들을 담아 새로운 모습으로 재창조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대단히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