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큰동산 세계자연/뜻 있는 이야기

[스크랩] 나주 돌장승...

제주큰동산 2008. 9. 13. 22:22

전라도닷컴에서 옮겨왔습니다..^^
눈길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뿌듯
나주 운흥사 터 장승

▲ 운흥사 터 상원주장군. 머리에 탕건을 눌러쓰고 쌍꺼풀진 왕눈
이 눈을 하고 있다. 코는 뭉퉁하고 크며 입은 합죽하다. 멋들어진
팔자수염이 가슴께까지 내려와 있다.
ⓒ 전라도닷컴

천하의 거시기한 여자 옹녀가 맨날 자빠져 놀고 있는 남자, 변강쇠에게 화딱지가 나서 한 마디 했다.
“건장한 저 신체에 밤낮 하는 짓이 잠자기와 그 노릇뿐, 굶어죽기 고사하고 우선 얼어 죽을 테니 오늘부터 지게 지고 나무나 하여 오소.”

옹녀의 투정에 강쇠는 어쩔 수 없이 지게를 지고 산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변강쇠가 누구이던가. 천하의 한량이 아니던가.
나무하는 일은 희대의 한량 변강쇠 체면에 스타일 구기는 일. 하늘이 두 쪽 나더라도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동구 밖에 서있는 장승을 뽑아서 지게에 지고 턱하니 집 마당으로 들어왔다.
옹녀는 화들짝 놀랐다. 옹녀가 아무리 거시기한 여인네라도 세상 물정은 아는 여자였다.
옹녀는 얼른 제자리에 원상복귀시켜 놓으라고 통사정을 했다.
그러나 강쇠는 통 큰 남자였다. “아니 고거시 뭔 소리랑가, 내가 힘들게 져온 것을 다시 가져다 노라고! 나는 그렇게는 못 하네” 하면서 장승을 불쏘시개로 만들고 말았다.
그 후 변강쇠는 장승 동티가 나서 팅팅 불어터지다가 하늘나라로 가고 말았다.

▲ 운흥사 터 하원당장군. 백호상이 있는 자리에는 ‘X’자가 새겨져
있다. 눈과 눈 사이에는 다섯줄의 주름살을, 콧등에는 세 줄의 주
름살을 살며시 그려 놓았다.
ⓒ 전라도닷컴

300여 년 간 눈비 맞으며 그때 그 자리 지키고 서

그 힘 좋다는 변강쇠를 죽일 만큼 장승은 우리 민족에게는 막강한 파워를 지닌 영물이었다.
이런 장승중에서도 울트라 파워급인 빼어난 장승이 전라도땅 나주에 있다.
왕십리 사탕만큼이나 둥글고 큰 눈, 변강쇠 코만큼이나 넓적하고 큰 코, 치아는 있지만 틀니 빠진 노인장의 입을 닮은 합죽한 입. 언뜻 보면 무척 무섭지만, 자세히 보면 고향 마을을 온전히 지키고 있는 우리네 할머니, 할아버지 상을 조금 희화화시켜 만들어 놓은 명품 장승이다.

우리나라 다도(茶道)를 정립한 초의선사가 처음 머리를 깎았던 절인 운흥사(나주시 다도면 암정리) 입구를 지키던 장승으로 1719년(조선 숙종 45년)에 만들어진 장승이니, 무려 300여 년을 그때 그 자리에서 눈비 맞으며 서 있다. 

할아버지 장승은 머리에 탕건을 눌러쓰고 쌍꺼풀진 왕눈이 눈을 하고 있다. 코는 변강쇠 코만큼이나 뭉퉁하고 크며 눈과 눈 사이에는 일자 주름살이 그려져 있다. 입은 합죽하며 멋들어진 팔자수염은 가슴께까지 내려와 있다.

몸통에는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을 이름표처럼 달고 있다. ‘上元’은 음력 정월15일, 즉 대보름날을 뜻하고 ‘周將軍’은 중국 주나라의 장군이란 의미이다.

할머니 장승은 모자가 없이 눈썹 위에 머리칼만 성글게 그려져 있다. 불상의 백호상이 있는 자리에는 ‘X’자가 새겨져 있다. 눈과 눈 사이에는 다섯줄의 주름살을, 콧등에는 세 줄의 주름살을 살며시 그려 놓았다.

몸통에 새겨진 이름표를 보니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이라 써져 있다. ‘下元’은 음력 10월 15일이며 ‘唐將軍’은 중국 당나라의 장군을 뜻한다. 장승의 이름이 주장군, 당장군인 것은 아마 중국 문물을 형성한 주나라나 중국 문물을 가장 번성시켰던 나라인 당나라의 위세를 빌려 장승의 권위를 세우고자 했던데 그 기원이 있는 성 싶다.

▲ 운흥사에서 약 3km 떨어진 곳에 있는 불회사 석장승. 운흥사 터
석장승과 비슷하여 만든 사람이 동일인물일 것으로 짐작된다.
ⓒ 전라도닷컴
 
‘화주승 변학이 주관… 별좌 김노인 즉이가 세웠다’ 글자 새겨져

할머니 장승에서 꼭 보아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
할머니 장승 뒷면에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일반적으로 장승에는 만든 연도를 새기지 않는데, 전국에 있는 많은 장승들 중 극히 일부에서는 만든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글자를 볼 수 있다. 

               化主僧 卞學(화주승 변학)
康熙 五十八年 二月 日 木廳(강희 58년 2월 일 목청)
                 別座 金老(별좌 김노)
                        卽伊(즉이)

해석하면 ‘화주승 변학이 주관하여 강희 58년 2월에 목청에서 별좌 김노인 즉이가 세웠다’이다. ‘화주승’은 이 동네 저 동네 다니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불교와 인연을 맺게 하고, 시주를 받아 절의 양식을 대는 스님으로 지금은 터만 남아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꽤 큰 절이었던 운흥사의 변학이란 승려가 시주를 받아 장승을 세웠음을 알 수 있다.

세운 연대는 강희 58년으로 계산해 보면 1719년(조선 숙종 45년)이다. ‘강희’는 중국 청나라 4대 황제인 강희제(1654~1722)때 쓰던 연호이다.

  ‘목청’과 ‘별좌 김노즉이’는 명확히 해석되지 않지만, 목청은 장승을 만든 곳을 의미하는 듯하고, 별좌는 ‘절에서 큰 공사를 할 때 그 일을 주관하는 사람’이므로 김노인 즉이라는 사람이 이 장승을 세웠음을 추측할 수 있다. 

ⓒ 전라도닷컴

늙은 농투성이들의 모습을 쏙 빼닮은 듯 정감있는 얼굴

그러나 이런 해석조차도 운흥사 터 석장승 앞에 서면 부질없는 일일 뿐이다. 그저 전라도 땅을 수 천 년 동안 대를 이어 살아온 늙은 농투성이들의 모습을 쏙 빼닮은 무서운 듯, 그러면서도 정감 있는 얼굴을 한 할아버지, 할머니 장승과 눈길 마주치고 오는 것만으로도 맘이 뿌듯해진다.    
전라도 할매가 간혹 속없는 짓 자주 하는 자기 영감에게 툭 툭 던지는 말이 있다.

“이 벅수 같은 영감탱이.”
“어째서 당신은 벅수 같은 짓만 골라서 한다요.”
여기서 벅수는 장승의 또 다른 이름이다.
장승은 지역에 따라 이름이 각기 다르다.

서울을 경계로 북부 지방에서는 ‘장승’, 또는 ‘장생’으로 주로 부른다. 그러나 충청도에서는 장승, 장생이, 장신 외에 ‘수살막이’  ‘수살목’으로 부르기도 한다.
전라도와 경상도에서는 장승과 함께 ‘벅수’  ‘법수’  ‘벅시’로 부른다. 또한 마을에 따라서는 장승을 미륵이라 하기도 하고 할아버지 당산, 할머니 당산이라 하기도 한다.

어디서 기원이 되었는지, 왜 그런 모양을 하게 되었는지는 확실히 모르지만, 어찌되었건 장승은 우리 민족과 수많은 세월을 살아온 영물임에 분명하다. 

 

글쓴이:장용준

장용준님은 함평고 역사교사로, 학생들에게 본명보다
'장콩'이란 별명으로 불리는 걸 더 좋아합니다.


 

ⓒ 전라도닷컴  

출처 : 나주 돌장승...
글쓴이 : 영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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