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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티벳 최고의 불탑, 간체 쿰붐

제주큰동산 2008. 2. 10. 12:23

 

지금까지의 노정: 중띠엔-(190km)-더친-(181km)-옌징-(112km)-마캄-(158km)-조공-(201km)-팍쇼-(219km)-보미-(89km)-퉁마이-(146km)-링트리/빠이-(120km)-드락숨쵸-(50km)-공푸장따-(274km)-라싸<-(280km)->시가체<-(146km)->간체

라싸에서의 노정: 라싸-(195km)-남쵸  * 붉은색은 왕복노정

 

샬루파 사원 지붕에서 바라본 팔코르 사원과 간체종, 티벳 전통구역 전경.

  

간체(Gyantse, 해발 3950미터)는 네팔이나 인도에서 올라온 여행자들이 처음으로 만나는 티벳의 여행지다. 네팔과 인도, 부탄으로 가는 교통의 요충지. 네팔에서는 니얄람이 가장 가깝고, 인도의 시킴 지역에서는 감파, 부탄에서는 로닥이 가장 가까운 티벳 땅이지만, 간체는 바로 이 세 곳을 두루 아우르는 지점에 위치하며, 과거에는 티벳 제3의 도시(현재는 제6의 도시로 전락)로써 15세기 이전만 해도 중국과 인도, 네팔과 부탄을 연결해주는 무역거점이자 교통의 관문 노릇을 했다. 시가체에서는 146킬로미터가 떨어져 있지만, 티벳에서 가장 편평하고 직선으로 뻗은 포장도로(티벳의 유일한 고속도로나 다름없다)가 나 있어 차를 타고 갈 경우 시간은 1시간 30분밖엔 걸리지 않는다.

 

티벳 최고의 불탑으로 불리는 8층 간체 쿰붐.

 

시가체에서 간체에 가기 위해 나는 아침 일찍 호텔을 나와 버스 터미널을 찾았다. 터미널이라고 해봐야 우리나라의 70년대 차부와 다를 바 없다. 당연히 나는 라싸행 버스가 내리는 곳에 간체행 버스가 있을 줄 알았으나, 차부의 한족 매표원은 고개만 가로저었다. ‘간체, 간체’라고 또박또박 물어보아도 시큰둥하게 고개만 가로저었다. 그 때 한족에게는 간체를 ‘장쯔’라고 해야 한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라 다시 이번에는 ‘장쯔, 장쯔’라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반응을 보이며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며 길을 일러 주었다. 그가 일러준대로 길가의 작은 차부를 찾아갔지만, 그곳엔 간체행 버스가 없었다. 또 다시 헤맨 끝에 더 허름한 차부 앞에 이르러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보니, 역시 고개만 갸웃거렸다. 그런데 하필 고개를 갸웃거리던 사람 중에 한 명이 마침 자기 차가 간체를 가니 타라고 하는 것이었다.

 

간체 쿰붐의 황금돔과 벽에 그려진 부처의 눈(보호의 눈). 

 

나중에 알았지만, 그는 간체행 버스가 서는 차부에서 간체 가는 손님을 상대로 자가용 영업을 하는 사람이었다. 당연히 영업 허가가 있을 리 없다. 간체까지 25원. 원래 버스요금은 간체까지 20원인데, 생각보다 비싸지 않은 요금이었다. 더구나 자가용을 타고 가면 버스보다 30~40분은 빨리 도착할 수가 있다. 다만 4명의 승객이 다 찰 때까지 자가용은 출발하지 않는다. 15분쯤 기다려 4명의 승객이 채워지자 한족 운전수는 자동차 시동을 걸고, 불법 복제된 것이 분명한 테이프를 요란하게 틀어놓았다. 승용차는 두명의 한족 손님과 한 명의 티벳족, 한 명의 한국인을 태우고 시가체를 벗어나 쏜살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속도계를 보니 120킬로미터를 넘나들었다. 티벳의 도로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속도임에 분명했다. 운전수는 도로에 나와 있는 모든 차를 추월했다. 더 이상 추월할 것이 없자 그는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추월하려는 듯 엄청난 속도로 도로를 질주했다. 워낙에 길이 좋은데다 굽이와 고개도 없으니, 그에게는 이 길이 고속도로나 다름없는 것이다.

 

팔코르사원 간체 쿰붐과 대법당에서 잠시 쉬고 있는 순례객들. 

  

그러나 길밖의 풍경은 승용차의 속도와는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들판의 사람들과 거리의 마차는 거의 정지한 듯 슬로모션으로 움직였다. 도로 양쪽에는 온통 푸른 칭커밭과 드문드문 유채밭이 펼쳐져 있다. 승용차는 그 좋은 길을 총알택시처럼 달려 1시간만에 간체에 도착했다. 시가체보다도 한적한 소읍의 분위기. 거리에는 유난히 마차가 많다. 그동안 티벳에서 만난 모든 마차의 수보다 훨씬 많은 마차를 나는 간체에서 만났다. 차보다도 인력거보다도 마차가 훨씬 많아서 가는 곳마다 마차가 눈에 띄었다. 네팔이나 인도에서 티벳으로 오는 여행자나 티벳에서 인도와 네팔로 넘어가는 여행자들이 처음과 마지막에 들르는 곳. 순전히 그것은 간체에 있는 팔코르 최데(Palkhor chode) 사원 때문이다. 사원을 알리는 입간판에는 줄여서 ‘팔최’(Palcho)로 적어놓았다. 팔코르 사원은 여행자들이 경탄해마지 않는 티벳 최고의 불탑(스투파), 간체 쿰붐(Gyantse Kumbum)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팔코르 최데 사원의 대법당.

 

‘십만탑’이란 뜻을 지닌 간체 쿰붐은 8층(기단 포함해 9층)에 그 높이가 35미터에 이르며, 층층이 이뤄진 법당이 총 108개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108개는 상징적인 숫자일 뿐이며, 실제로는 그에 미치지 못한다. 거대한 만달라를 상징하는 쿰붐의 모양은 주요 법당이 자리한 5층까지는 8각형을 이루고, 위층은 원형으로 이뤄져 맨 꼭대기에는 거대한 황금첨탑을 얹어놓았다. 또한 쿰붐의 6층에는 간체와 중생을 굽어살피려는 듯‘보호의 눈’이라 불리는 부처의 눈을 사방에 그려 놓았다. 1427년 건축된 이 불탑은 네팔 양식에 따라 지은 것이라고 하는데, 일반인에게는 6층까지 약 30여 개의 법당만 개방하고 있다. 팔코르 사원의 입장료는 40위안이고, 쿰붐과 대법당 내부 촬영은 카메라에 따라 10~20위안 정도를 더 받는다.

 

       

팔코르 사원 대법당 내부(위왼쪽)과 한줄기 빛이 스며드는 옥상으로 이어진 계단(위오른쪽).

 

간체 시가지에서 팔코르 사원으로 이어진 길가의 집들은 모두가 무언가를 파는 가게들이다. 이 많은 가게가 제대로 운영될 리가 만무하지만, 가게마다 비슷비슷한 물건들이 잔뜩 전시돼 있다. 거리의 좌판도 거개는 비슷비슷한 물건을 판다. 신발과 옷, 철물과 과일, 차와 같은 것들은 주로 점포에서 팔고, 잡화와 농기구, 마구, 온갖 장신구와 불교용품은 좌판에 펼치고 있다. 게중에는 10 초반의 소녀까지도 거리에 나와 팔릴 것같지 않은 물건을 팔고 있다. 사원이 가까울수록 좌판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점포는 열이면 열 한족이 운영한다면, 좌판은 티벳인의 몫이다. 티벳인들은 외국인을 보면 물건값을 4배 이상 높게 부른다.  10원에 살 수 있는 팔찌를 50원으로 불러놓고는 흥정을 하면 10원까지 내려간다. 30원짜리 마니석도 10원, 외국인이 꼭 하나씩은 사 가는 마니차는 200원 이상을 부를 때가 많지만, 60~80원이면 살 수 있다.

 

샬루파 사원에서 바라본 간체종(위)과 간체 주변의 들판(아래).

 

사실 좌판에 나온 티벳인들은 외국인들에게 물건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다. 외국인에게 처음에는 몇 배 이상 가격을 불러 사면 큰 이득이고, 안사면 흥정을 통해 사게 만든다. 이들은 실로 팔려고 하는 의지가 눈물겨울 정도다. 제대로 된 가게는 한족이 모두 차지하고 있으니, 거리에서 작은 것이라도 팔아넘겨야 생활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들이 관광객에게 바가지를 씌우고, 악착같이 달라붙어 물건을 파는 행위는 절실한 생존의 모습인 것이다. 시내에서 사원으로 이어진 길에는 그리 높지 않은 산자락을 빙 둘러쌓은 고성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간체종(왕궁과 성)이다. 간체종은 본래 있던 산성을 14세기 들어 팍파 펠장포(Phakpa Pelzangpo)가 요새형 궁전으로 만든 곳인데, 9세기쯤 얄룽 왕조의 마지막 왕인 팔코르첸(Palkhortsen)의 궁전도 이 곳에 있었다고 한다.

 

마차와 마부 너머로 간체종이 보인다.

 

이 곳은 과거 라다크(Ladak)를 비롯한 주변 외세의 침략을 막기 위한 요새로써, 오랜 동안 함락되지 않는 성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1904년 영국군의 침공으로 성벽과 상당수의 건물이 파괴되었으며, 중국 점령 이후 또 한번 파괴되어 성벽 일부를 제외하곤 옛 모습(현재 복원중)을 거의 잃었다. 그럼에도 간체를 찾는 많은 여행자들은 한번씩 간체종을 올라가곤 한다. 이 곳이 팔코르 최데 사원을 조망하는 최적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팔코르 사원은 이 간체종을 오른쪽에 끼고 걸어서 채 5분도 안되는 거리에 위치해 있다. 팔코르 사원은 9세기 팔코르첸의 집권 시기에 처음 지어졌지만, 15세기 들어 다양한 종파의 사원이 팔코르에 들어서면서 성장하였다. 그러나 중국 점령 이후 남아 있는 사원 건물은 현재 두 곳(샤카파 사원과 샬루파 사원)에 불과하다.

 

티벳 전통구역 골목에서 만난 사람들. 

 

매표소를 지나면 오른편에 대법당이 있고, 왼쪽에 거대한 간체 쿰붐이 자리해 있다. 간체 쿰붐을 돌아 대법당 뒤쪽으로 올라가면 샬루파 사원이 자리해 있는데, 지금은 건물의 뼈대만 남아 내부는 텅 비어 있다. 하지만 이 사원의 지붕에 올라가면 팔코르 사원과 간체종, 간체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여 최고의 전망대 노릇을 한다. 나는 이 곳에 올라 한시간쯤 하늘과 들판과 사원과 구름만 구경하다 내려왔는데, 개인적으로는 간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다. 날씨는 뜨거웠고, 오랜 동안의 여정으로 내 몸은 지쳐 있었다. 내 눈은 계속해서 간체 쿰붐의 사방에 그려진 부처의 눈과 마주쳤다. 그것은 참으로 이상한 경험이었다. 단지 나는 쿰붐에 그려진 눈과 마주쳤을 뿐인데, 죄인처럼 자꾸만 나는 눈을 피해 달아났다. 그 눈은 지난날의 내 모든 치부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티벳 전통구역에서 만난 빨래하는 아낙들.

 

어쩌면 내가 폐허가 된 사원 지붕에 더 오래 머물러 있지 못하고 서둘러 내려온 것도 나를 보는 부처의 눈 때문일지 모른다. 눈을 피해 나는 캄캄한 대법당 안으로 피신했다. 한낮에도 법당은 한밤중처럼 어두웠고, 종종 하늘로 열린 계단을 통해 한줌의 빛이 겨우겨우 쏟아져내렸다. 거기서 나는 아주 인상적인 풍경을 보았는데, 중국 인민복을 입은 티벳 소년이 계단에 비스듬히 기대 그 겨우 쏟아지는 빛을 한참이나 쳐다보는 풍경이었다. 그것은 마치 소년의 어두운 현실에 필요한 한 줄기 간절한 빛과 같았다. 식민지 티벳의 어두운 현실에 겨우겨우 스며드는 한 줄기 빛을 나는 본 것이다. 그것은 바로 내가 피하려고 했던 ‘부처의 눈’이었다. 그것은 어디에도 없지만, 어디서나 존재하는 것이었다.

 

지붕과 대문에 흔하게 장식하는 야크뿔.

 

팔코르 사원에는 유난히 개가 많다. 사원의 개들은 그늘이란 그늘을 다 차지한 채 누워 있다.  말은 마차를 끌어주고, 야크는 젖과 고기를 제공하며, 산양은 털과 유제품을 사람에게 주지만, 티벳에서 개는 사람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아무것도 주지 않지만, 이 땡볕에 가장 편하게 쉬는 녀석들이 바로 이 녀석들이다. “아무것도 주지 않다니요. 시체를 뜯어먹지요.” 한 순례객은 개의 쓸모가 야크와 같다고 했다. 요약하자면 이런 것이다. 티벳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조장(鳥葬)을 하거나 수장(獸葬)을 하는 것이 오랜 전통인데, 수장 즉 짐승에게 주검을 맡기려면 ‘개’(들개)가 없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티벳에서의 매장은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장법이다. 날씨가 건조해 매장을 하게 되면, 시체가 잘 썩지 않기 때문이다. 시체가 썩지 않는다는 것은 환생을 믿는 이들에게는 매우 치욕스러운 일이다. 어쨌든 나의 관점에서는 시체를 들개에게 내어준다는 것이 썩 유쾌한 방법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난전에 앉아 주사위 놀이를 하는 사람들(왼쪽). 그 옆에서 얌전하게 기다리는 말(오른쪽).

 

팔코르 사원을 한바퀴 둘러본 뒤 나는 사원 앞에서 시가체종까지 펼쳐진 티벳 전통구역을 한참 떠돌았다. 이 곳은 티벳의 도심에 존재하는 티벳 전통구역 가운데 가장 티벳다운 풍경이 존재하는 곳이나 다름없다. 흙벽돌로 된 2~3층의 집들은 대체로 모든 벽에 흰색 회칠을 해놓았다. 1층은 따로 외양간이나 마굿간으로 사용하는 집도 있지만, 상당수의 집들은 골목과 집 사이가 그냥 외양간이고 마굿간이다. 해서 티벳구역 골목에서는 유난히 많은 소들이 눈에 띈다. 집의 담과 벽에는 ‘쭤’를 붙여놓은 풍경도 흔하게 만날 수 있다.

 

담과 옥상 벽에 쭤(야크나 소똥을 칭커짚과 이긴 덩어리)를 붙여놓은 티벳 전통가옥.  

 

‘쭤’란 야크나 소똥을 칭커짚과 섞어 흙반죽을 하듯 둥그렇게 만든 덩어리를 가리킨다. 이 쭤는 볕이 잘 드는 벽이나 담에 붙여놓았다가 다 마르면 불쏘시개로 사용한다. 지붕에는 나뭇가지에 타르쵸를 걸어놓은 룽다가 집집마다 걸려 있고, 대문에는 티벳불교를 상징하는 해와 달이 여기저기 그려져 있다. 내가 골목을 배회하며 자꾸만 셔터를 누르자 멀리서 나를 보고 아이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두 명이던 아이들이 금세 대여섯명으로 늘어나 졸지에 나는 아이들을 이끌고 이 골목 저 골목을 쏘다녔고, 사진을 찍을 때마다 아이들에게 검사를 맡아야 했다. 아, 이 귀여운, 무서운 녀석들!

 

라마불교를 상징하는 해와 달을 그려놓은 대문.

 

아침에 간체에 도착해 저녁이 다 돼 얼추 구경이 끝났다. 가는 길에 시가체로 간다는 택시를 집어탔으나, 택시 기사는 능청맞게 50원을 부른다. 25원에 시가체에서 왔다는 사실을 모르는 그는 내게 바가지를 씌우려 했던 것이다. 내가 택시를 세우고 25원 아니면 안가겠다고 하자 택시기사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택시기사는 4명의 손님을 채우기까지 무려 50분이나 간체 시내를 돌아다녔다. 갑자기 하늘에서는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한바탕 소나기를 퍼부어댔다. 택시는 그 소나기를 뚫고 시가체를 향해 달렸다. 역시 택시는 아침의 자가용이 그런 것처럼 단번에 시속 100킬로미터를 넘어섰다. 졸음이 밀려와 깜빡 잠이 들었는데, 어느 새 택시는 시가체에 당도해 있었다. 이제 티벳에서의 날도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비가 그친 하늘에서는 슬프고 아린 초승달이 돋았다.

 

= 글/사진: 이용한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출처 : 티벳 최고의 불탑, 간체 쿰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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