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정비못의 鄭氏碑
공민왕 23년(1374) 원의 목호가 난을 일으켰다. 조정에서는 최영(崔瑩), 염흥방(廉興邦) 등에게 이를 치게 했는데, 이를 합적의 난(哈赤의 亂)이라 한다.
이 때 山南 石谷村(현 남원읍 의귀리)에 石迭里甫介의 처 鄭氏가 있었는데 합적의 난 때 남편 보개(甫介)가 죽었다. 정씨는 나이가 어린데다가 자식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와 안무사와 군관이 이를 탐내어 꾀었으나 정씨는 끝내 정절의 뜻을 굽히지 않고 자결하려 했으므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열렬한 그 뜻을 가상히 여겨 정려(旌閭)를 세웠고, 순조 34년(1834)에 고쳐 세웠는데 지금 남원 속칭 정비못에 이 비석이 있는데 ‘鄭碑못’이라는 이름도 이 비석에서 유래하였다.
● 참고문헌
① 南濟州郡, 『南濟州의 傳統과 얼』, 1981.
② 朴用厚, 『濟州道誌』, 白映社, 1976.
출처 : 제주큰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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