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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조선 전기의 제주

제주큰동산 2013. 9. 20. 21:15

제 4 장 조선 전기의 제주도

 

 

  조선 전기는 전국에 걸쳐 중앙 집권 체제가 성리학적 정치 이데올로기에 의해 강력하게 구축되던 시기이다. 특히 조선 전기는 체제의 제도적 정비가 시급히 요망되었으며 그러한 정책적 필요성에 부응하여 제주도에도 중앙 집권 체제의 기틀이 갖추어지던 때였다. 따라서 이 시기를 통해 제주도에서는 지방 행정 조직이 정비되었는가 하면 공부제도가 체계화되기 시작하였고 국가교육 형식이 확충되었다.

 

  지방 행정 조직 정비와 관련하여 삼읍이 설치되었고 그에 따른 지방관 제도가 운영되었는가 하면 제주도의 특수성을 바탕으로 토관직이 병행되었다. 공부제도로서는 마정(馬政)이 대표적이었으며 귤이나 각종 토산물의 진상과 함께 전제(田制)가 시행되었다. 교육형식의 확충과 관련하여 향교와 서원이 설립되었고 이에 적절한 인재등용책이 이루어졌는데 제주도의 지역적‧역사적 특수성을 고려한 선상정책과 함께 과거제도가 병행되었다.

 

  조선조의 제주도라는 특수한 현실을 가능케 하였던 중앙 정부의 대표적인 정책으로는 출륙 억제 정책과 유배 정책을 들 수 있다. 출륙 억제 정책은 난민들의 도외출륙을 방지함으로써 적절한 인구를 유지하고자 했던 정책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공동체의 강화라는 면과 함께 대외교류의 억제라는 부작용을 배태시켰다. 유배 정책은 조선 전기에서부터 일관되게 시행됨으로써 조선조 제주도의 대표적인 기능으로서 유배지 역할을 가능케 하였다. 이같은 영향으로 많은 유배인들이 내도하게 됨으로써 독특한 유배문화를 형성하게 되었다.

 

  조선 전기 제주도에는 왜구의 침입이 빈번해지자 그에 따른 제주도 나름대로 방어시설이 구축되었고 임진왜란과 관련하여 獻馬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대외적인 어려움과 함께 제주도 내부적으로는 가렴주구를 일삼는 지방관들의 횡행으로 각종 민폐가 발생하였고 나아가 역모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그런 가운데서도 선정관들이 나타나 민폐의 최소화를 위해 노력하였고 민심 진작에 진력하였는가 하면 각종 문화발전에도 많은 기여를 하였다.

 

  이 시기에 제주도 특유의 자연환경과 역사적 배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이루어진 성지나 각종 건축물, 사적지, 각종 기록물과 같은 많은 유형 문화재들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바다와 관련된 제주도의 특수한 입지적 조건 때문에 많은 표도인과 표류인들이 생겨났고 이것은 이문화 접촉의 창구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이런 가운데에서 제주도에도 많은 명사들이 탄생하였고 중앙에서도 활약이 컸다. 또한 유배 정책과 관련되어 새로운 입도조들이 출현하였다.

 

 

출처 : 제주큰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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