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밟기
詩 : 솔정수
사진 : 제주큰동산
초등학교가 국민학교라 불리던,
검정 고무신 사이 흰 고무신 쯤이면 어깨 으쓱이던 시절
봄이 채 되기 전에 한두번 날잡아 전교생이 오전에
보리밟기 나가곤 했었지
조근조근 밟고 또 밟아야 보리 이삭 팬다던
선생님 말씀이 무슨 말인고 싶다가도
수업 대신 하는 재미에, 남의 밭 맘껏 밟는 재미에
교감 선생님 따라 뒷짐지고 팔자 걸음 흉내내며
꾸욱꾹 밟던 날들
이렇게 보리처럼 크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삼십 몇년 후
택견이란 걸 하면서 날마다 품밟기를 하게 되었는데
땅을 제대로 밟지 못하면 높이 발이 올라간들 말짱 도루묵이라시던
사부님 말씀이 그 때 교장 선생님 조회 말씀을 참 닮았어
코흘리개 그때나 흔줄녘 지금이나
내 발밑에는 청보리싹 진초록 냄새가 시큼 묻어나는데
아직도
이삭 팰 줄을 몰라
* 보리밟기 : 가을에 뿌리내린 보리 뿌리와 흙 사이에 서릿발이 서서 땅이 뜨게 되고 봄이 되면
그 공간이 건조해져 보리 뿌리가 말라죽기 때문에 밟아서 그 공간을 없애고 뿌리퍼짐도
돕는다
사진 : 굴거리나무 순과 보리, 제주큰동산, 2009.05.02.08:58, 제주 서귀포 송산동 정방폭포 주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