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절 군현시대의 탐라
숙종 10년(1105)에 이르러 그때까지 사용되어 온 耽羅의 국호가 폐지되고 耽羅郡이 설치되었다. 이로써 탐라국은 해체되어 고려의 지방 행정 구역 중 하나로 편제되면서 성주와 왕자는 정치에서 밀려나 고려의 직접적인 통치하에 들어가게 된다. 이 무렵 탐라는 도읍지인 대촌 외에 중촌, 소촌 등 취락이 형성되었고, 특히 대촌 주위에는 외적 방어를 위한 탐라 특유의 현무암으로 성곽이 축성되었다고 한다.
고려의 지방 행정 구역의 일부로 편제된 이래 탐라에서는 고려 조정에 상납할 산물을 공출해야 했으며, 이러한 공출 의무뿐만이 아니라 제주의 지배자, 토호, 그리고 京來官들에 의한 가혹한 수탈이 이어져, 이는 빈번한 도민들의 중앙관리의 수탈에 대한 투쟁, 즉 민란의 발생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의종 7년(1153)경 郡을 縣으로 개칭한 이래 고종 때에 이르러 탐라가 濟州
로 개칭되었으며, 고려는 경래관인 副使와 判官 등을 더욱 많이 파견하였으
나 성주의 지위와 권위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다.
이 무렵 제주에는 良守의 난(1168), 煩石·煩守의 난(1202), 文幸奴의 난(1268) 등 민란이 일어났으나 오래지 않아 모두 평정되었다. 원종 12년(1271)에는 김통정이 진도에서 삼별초를 이끌고 항파두리(古城里)에 토성
을 쌓고 여몽 연합군과 수차에 걸친 항쟁을 벌여 대몽 항쟁의 최후의 보루가 되기도 하였다.
● 참고문헌
① 濟州道, 『濟州道誌』第一卷, 1993.
② 金宗業 , 『耽羅文化史』, 조약돌, 1986.
③ 金宗業, <自治的 경향의 高麗前期>,『제주향토무크』I, 濟州歷史硏究
會,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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