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 시볼트의 <조선견문기>에서 알 수 없는 조선 이야기 최두한 칼럼
폰 시볼트는 독일의사였다. 무슨/어떤 배를 탔다는 말은 없지만, 1823년 2월부터 1830년까지 7년 동안 일본의 출도(出島: 데지마)에서만 활동했다는데, <조선어사전>을 편찬도 했다고 한다. 이 <조선견문기>는 폰 시볼트가 <일본>전9권 가운데 제5권<조선>편만을 번역한 것이다. 류상희(柳尙熙)씨가 번역한 박영사 출판(1987년)의 것인데, 여기에 소개하는 내용은 그 책의 제2장 pp.38-40에 있는 것이다. |
폰 시볼트가 지은 <조선견문기>(박영사, 1987)에서 아직 밝히지 않았던 것을 오늘은 조선의 토질과 조선에서 나는 동물/식물에 대해 더 찾아보기로 한다.
첫째, "기후는 일본의 같은 위도에 있는 것보다 더 혹독하게 춥다. 북쪽의 산악지방에서는 겨울은 엄한(嚴寒)으로 막혀 버리고, 많은 눈이 쌓인다. 압록강과 다른 강은 사람을 태우거나 짐을 실은 말들이 건너갈 수 있을 정도로 얼어붙는다."(p.39)고 했다. 이것은 북해도(北海島)가 두만강보다도 더 북쪽에 있고 더 추움에도 반대로 설명한 것은 적어도 북해도는 일본 땅이 아니라는 말이 되며, 이에 따라 그 남족의 일본열도도 일본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말이 된다. 그리고 압록강과 다른 강도 북쪽에서는 겨울이면 얼어서 짐실은 말이 건너갈 수 있다고 했다. 한반도에서도 가능성은 없지 않다. 그러나 이곳은 일본열도가 일본이 아닐진대, 압록강과 다른 강들은 섬서성/녕하성/감숙성을 지나는 강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바로 그곳엔 요즘도 실제로 한겨울엔 얼음이 너무 두꺼워서 해빙시에 홍수 내지 류빙의 피해를 막기 위하여 폭약으로 폭파까지 한다.
둘째, "조선을 방문한 일본인은 이 나라(조선)의 땅이 그다지 비옥하다고는 보지 않는다. 논과 밭에 벼농사는 짓지만 품질은 일본것보다 떨어진다. 특히 북부 지방에 있어서의 쌀농사의 수확은 극히 빈약하다."(p.39)고 했다. 조선이 한반도이고, 일본열도가 일본이라면, 구태어 토질의 비옥/척박함이라든지, 쌀의 품질에 대해서 지리적으로 떨어진 한반도와 일본열도와를 서로 비교할 필요가 있을까? 이것은 조선과 일본이 같은 지역인 지리적 위치 차이에서 서로 비교의 대상이 되는 표현이다. 즉 중국대륙에 조선과 일본이 함께 있었다는 말이 된다.
셋째, 닭/비들기/거위/오리/가마우지를 이들 조선인은 가축이라 하며, 또 아름다운 종류의 꿩/매/해오라기/학 등도 말하고 있다. 화계(花鷄)는 티티새류/까마귀/까치가 일본에서는 조선으로부터 건너온 새라는 사실을 나도 알고 있었다. ...호랑이나 표범의 털가죽/가오리껍질/생사/유지/ 약간의 비단 및 무명제품 그리고 인삼이 수출품임을 알 수 있다."(p.40)고 했다. 여기서는 가축의 의미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조선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새가 티티새/까마귀/까치라는 것이다. 이 표현은 참으로 재미있는 것이다. 티티새는 지빠귀/개똥지빠귀/백설조(白雪鳥)라고 하는데, 보다 큰 까마귀는 몰라도, 그 작은 숲속의 새가 철새도 아니면서 동남쪽 그 먼 바다를 건너 일본열도로 날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중국대륙이 조선이고 그 동부지역(강소성/절강성/복건성 등의 해변 지역)이 일본(국가형태는 아닌 무사들의 집단임)이기에 가능한 말이라고 본다. 이런 새들의 이동 가능성에 대해서는 참으로 조류학자에게 앞으로 확인해볼 문제다.
그리고 표범이니 호랑의 털가죽이 남방/벵갈/순다 제도 등(열대지방)에서 나는 것보다 털이 조밀하고 품질이 훨씬 좋다고 했다. 한반도에서 표범이 살았다면, 그런 털가죽의 실체를 비교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1823-1830년 사이에 표범/호랑이/재칼 등이 살았다고 했는데 그 뒤로 멸종되었을까? 지리적 환경의 변화로 그랬다면 언제쯤이었을까? 그런데 지금도 중국 남부 지역에는 그런 동물들이 살고 있다.
넷째, "[657년 7월] 서해 중국으로부터 사절이 낙타 1마리와 노새 2마리를 가지고 오다. 그들은 백제를 경유하는 귀로를 택했으나, 신라와 전쟁이 발발하여 도중에 일본으로 돌아왔다."(p.160)고 했다. 우선 가지고/몰고 온 것이 낙타/노새였다. 그리고 낙타/노새라면 뱃길로 배를 타고 올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육로였다고 보며, 그것은 그 사절이 백제를 경유하는 길이므로, 백제가 곧 중국대륙에 있었어야 가능하다. 그 지역이야 더 확인해야 하겠지만, 사천성을 중심한 양자강 이남 지역일 것이다. 전라도 익주(益州)가 사천성 성도현(成都縣)이다. 그리고 더 재미있는 것은 백제와 신라가 전쟁을 했는데 사절들이 일본으로 갔다는 것이다. 한반도로서는 참으로 불가사의/불가해/불가능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조선에 관한 폰 시볼트의 설명에서 조선에 대해 너무도 무지했다고 하더라도, 한반도에서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파인애플/빈랑/재칼/표범"이라든지, "낙타/노새"의 이동과 "사절"의 이동은 중국대륙이 조선이라고 해야만이 가능한 설명이다. 이런 상당한 부분이 내가 번역하고 연구한 <새롭게 고쳐 쓴 하멜 표류기>에서 분석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는 사실이다.
앞으로는 전쟁사에서 이런 사실, 중국대륙 자체가 조선이라는 것이 밝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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