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큰동산 역사뜨락/한국사이야기

독도는 우리 땅 - 박세당의 자료 발굴와 함께

제주큰동산 2008. 1. 13. 12:25
 

우산도는 역시 독도 - 조선후기 박세당의 자료 발굴

“울릉도에서 정상 안오르면 우산도가 보이지 않아”… ‘우산도가 울릉도’라는 日 주장 뒤집어


                                          

                                        <그림1>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한 국제상황 비교



  독도 영유권의 쟁점인 ‘우산도(于山島)가 독도’임을 입증하는 새로운 자료가 발굴되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의 ‘해양수산동향’(1250호)는 “조선 후기 박세당(朴世·1629~1703)이 쓴 ‘울릉도’ 분석한 결과, 우산도는 울릉도가 아닌 독도를 지칭하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했다.


 ‘독도가 원래 우리 땅’이라 할 때 그 중요한 근거가 우산도(于山島)의 존재이다. ‘세종실록’ 지리지는 “우산(于山)과 무릉(武陵) 두 섬이 울진현의 동쪽 바다 가운데 있다. 두 섬은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볼 수 있다”고 기록하였다.

 

 

<그림2> 獨島의 일부 모습(2007년 12월 23일)

 

 여기서 ‘무릉’이 울릉도, ‘우산’은 독도라는 것이 한국 학자들의 해석이었다. 그러나 일본 학자들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주석에 “우산도와 울릉도가 본래 한 섬이었다는 설도 있다”는 내용을 근거로 우산도는 독도가 아니라 ① 울릉도이거나 ② 울릉도에서 동쪽으로 2㎞ 남짓 떨어진 죽도(竹島)를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조선 후기 주요 학자 중의 한 사람인 서계(西溪) 박세당의 기록 ‘울릉도’를 분석한 결과는 달랐다. 이 글은 박세당의 후손이 2001년 한국학중앙연구원에 기탁한 ‘서계 종택 고문서’ 중 ‘서계잡록’에 실려 있는 필사본으로, 지금까지 사료의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다.


<그림3> 朴世堂의 ‘鬱陵島’ 원본 일부


 박세당은 이 글에서 배를 타고 울릉도에 갔다가 돌아온 승려로부터 전해들은 얘기를 기록하면서 이렇게 언급했다.


“대개 두 섬(울릉도와 우산도)이 그다지 멀지 않아 한번 큰 바람이 불면 닿을 수 있는 정도다. 우산도는 지세가 낮아, 날씨가 매우 맑지 않거나 최고 정상에 오르지 않으면 (울릉도에서) 보이지 않는다(不因海氣極淸朗, 不登最高頂, 則不可見).”


  이 기록은 ① ‘우산도’는 분명 울릉도와 같은 섬이 아니며, ② 죽도나 관음도처럼 울릉도와 인접한 섬도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죽도·관음도는 울릉도에서 높이 올라가지 않거나 날씨가 흐려도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산도’가 될 수 있는 섬은 독도밖에는 없다.

  이는 박세당과 같은 시대의 인물인 삼척영장 장한상(張漢相·1656~1724)이 쓴 ‘울릉도 사적’에서 “(성인봉에서) 동쪽으로 바다를 바라보니 동남쪽에 섬 하나가 희미하게 있는데, 크기는 울릉도의 3분의 1이 안 되고 거리는 300여 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기록과도 통한다. 박세당과 장한상은 모두 독도가 조선 땅이라는 일본측으로부터의 확인을 받았던 숙종 때의 어부 안용복(安龍福)과 동시대 인물이라는 점에서도 이들의 인식은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에 대해 신용하 교수는 “처음 발굴된 것으로, 독도가 우리 땅이었음을 밝히는 매우 훌륭한 자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