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큰동산 역사뜨락/한국사이야기

[스크랩] 가락국의 마지막(悲雲의 주인공)왕, 구형왕릉 탐방

제주큰동산 2008. 1. 28. 01:16

10월 4일 대전에서 사업을 하는 외사촌형님이 다녀가는 길에 평소 가야에
관심이 많았던 형님을 따라 산청의 지리산 자락에 자리한 가야의 마지막
10대 왕인 구형왕릉을 찾아나섰다.
대전에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달려 함양을 지나고 생초나들목(ic)에 내려 
한번 다녀 온 경험이 있는 형님 덕택에 기사로만 접하였던 구형왕릉을 쉽게 
탐방하게 된 것이다.

찾아가는 곳 ☞
대전통영고속도로 생초나들목을 나오면(국도 이용시 입구) 구형왕릉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있다. 이정표를 따라 지방도를 따라 금서면 소재지를 지나고 조금만 더 
진행하면 도착 가능하다(생초나들목 인근에서 약8키로미터)

내가 머물고 있는 경남 고성에는 소가야의 도읍이 있는 곳이었고, 고향에 오가는
길인 함안과 창녕에는 아라가야와 비화가야가 도읍지를 삼았으며 왕릉에 준하는
고분古墳이 그의 존재를 전해주고 있어 이번 추석을 맞아  고향가는 길에 창녕의
비화가야와 박물관을, 돌아오는 길엔 함안의 아라가야의 고분과 박물관을 디카에 
담았는데 10월 3일엔 고성의 소가야 고분군을 디카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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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살문이 손상된 채 방치되어 있어 보는 이의 마음이 편치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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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찍힌 사진을 보면 석수(돌짐승)가 문인석과 무인석의 앞에 놓였음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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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체가 확인이 되지 않고 전해온다는 의미로 앞에 傳(전할/전)을 붙여,
전구형왕릉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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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릉을 보호하는 호릉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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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광이라써 흐릿하다...
(사진을 찍으려면 오전에 도착하는 것이 좋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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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마 조선시대에 세워 진것으로  여겨지는 문신석과 무신석,
좌우 文臣石과 武臣石  조금씩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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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傳구형왕릉은 가락국의 제10대 임금이자 마지막 임금인 구형왕의 무덤으로 
전해오고 있다. 무덤의 형태는 경사진 지형을 이용하여 잡석으로 방형의 단을 
이루면서 피라밋 모양으로 쌓아올려 모두 7단을 마련한 돌무덤이며 상면에 
타원형의 봉분이 마되었으나 일반 봉토 분墳과는 전혀 다르다. 특이한 점은 
전면 4단째에 작은 감실이 마련되어 있는 것인데 그 용도는 알 수 없다. 
높이는 7.15M 이며 무덤앞의 비석,석물은 모두 후대에 만들어 세운 것이며 
문화재 정화사업으로 축대, 교량 등을 정비 하였다.(산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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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행하여 준 외사촌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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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살문이 손상된 채 방치되어 있어 보는 이의 마음이 편치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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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군 금서면 화계리에 위치한 전구형 왕릉은 가락국의 마지막왕(제10대)인 
구형왕의 무덤으로 전해져온다 . 릉의 형태는 경사진 지형을 이용하여 잡석으로 
방형의 단을 이루면서 피라미드 모양으로 쌓아 올려 7단을 마련한 돌무덤으로 
상단에 타원형의 봉분이 마련되어 있으나, 일반 봉분과는 전혀 다르다고 한 것이 
내가 아는 전부였다. 
사적 제214호 구형왕릉으로 가는 길 주변에는 역사의 향기가 가득하다. 구형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신 덕양전을 돌아 올라가다 보면 제일 먼저 오른쪽 계곡 변에
 망경루라는 조선시대 정자가 있으며 조금 더 올라가면  주차장이 보이고 왼쪽에 
가락구기 비문, 다시 오른쪽으로 구형왕릉의 증손자인 김유신장군이 활을 쏘았다는 
사대비(射臺碑)가 있다. 
다시 걸어 200여미터를 오르니 잘 정리된 왕릉이 보인다. 다리도 홍예교로 정돈
하였고 인공적 가미가 없어 비교적 잘 정돈되어 마음에 드는 곳이다.    
구형왕릉 입구에서 왼쪽으로 왕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를 따라 1.8km 올라가면 
허준의 스승으로 알려진 유의태 샘터가 있다. 이곳 산청 상정마을 출신인 유의태가 
샘터의 물을 길어 약재를 달였다고 전해지는데, 서쪽으로 나와 동쪽으로 흐르는 
서출동류수(西出東流水)로 위장병과 피부병 등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약수터 
인근에는 구형왕이 여생을 마쳤다는 수정궁터가 있다. 그러나 시간이 없어 산에 
오르기는 포기했다. 
 구형왕(仇衡王)은 가락국(駕洛國)의 제10대 왕(재위 521~532)으로 구해왕이라고도 
불린다. 겸지왕(鉗知王)과 각간(角干) 무력(武力)의 아들이며,  김유신(金庾信)의 
증조부(曾祖父)이라고 한다. 532년(신라 법흥왕 19) 신라에 항복하여 상등(上等)의 
벼슬과 가락국을 식읍(食邑)으로 받았다.  
 구형왕릉은 일반 능과는 전혀 다른 특이한 형태로 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돌로 쌓은 
석총이라는 점이 관심을 끈다. 구형왕은 서기 521년에 왕위에 오른 뒤에 562년, 
신라 진흥왕이 쳐들어오자 항복했다고 전해진다. 다른 설에 따르면 서기 490년과 
532년 사이에 멸망했다고도 한다. 구형왕릉의 정식 명칭은 전구형왕릉이다. 
구형왕릉 앞에 전(傳)자가 붙은 이유는  그의 능이라는 확증이 없고, 단지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구형왕릉은 동쪽으로 뻗은 경사면에 
7단으로 돌을 쌓아 올렸으며 정상부분은 봉분처럼 타원의 반구형을 이루고 있는데, 
전체 높이는 7.15미터에 이른다. 4번째 단에는 높이 40cm, 깊이 68cm, 너비 40cm의 
감실이 설치되어 있지만 이것이 무엇을 위한 시설인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구형왕릉 앞면 중앙에는 가락국 양왕릉이라는 비석이 서 있고, 돌로 쌓은 담이 이 석총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또한 문인석, 무인석, 석수(돌짐승), 상석, 장명 등이 1쌍씩 
배치되어 있으나 이 석물들은 왕릉을 쌓았을 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근래에 새로
 조성한 작품이다.  
 역사적 사실만을 따지자면 구형왕릉은 사적 제214호. 층단(層段)을 이루는 방형
(方形)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내리는 경사면에 축조하였다.  전면은 7단을 
이루고, 후면으로 갈수록 경사져서 층의 높이에 따라 체감되고 있다. 꼭대기는 
타원형으로 되었고 전면 중앙에서의 전체 높이 7.15m이며, 제4단 동면에 너비 40cm 
내외, 높이 40cm 내외, 깊이 68cm 내외의 감실이 개설되어 있다. 이 돌무덤을 
중심으로 같은 잡석으로 높이 1m 내외의 담을 쌓고 전면 중앙에 〈가락국호왕릉
(駕洛國護王陵)〉이라고 새긴 석비가 있다. 그 앞에 상돌과 장명등이 있으며 좌우에는 
문인석․무인석․돌짐승이 l쌍씩 배치되어 있으나 이 석물들은 근래의 
작품으로 돌무덤과는 시대적 차가 많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31 산음현(山陰縣) 산천조(山川條)와 홍의영(洪儀泳:1750~
1815)의 《왕산심릉기(王山尋陵記)》에서 이것이 왕릉임이 밝혀졌고, 이 산 아래에는 
그 서쪽에 있던 왕산사(王山寺)에서 옮겨왔다는 구형왕과 왕비의 초상화가 봉안된 
재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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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형왕릉 주차장에서 류의태 약수터(약 1.8 km)와 산행이 시작되는 등산로가 있다. 

 
 ♬청솔의 한  - 김영동(대금연주)


출처 : 가락국의 마지막(悲雲의 주인공)왕, 구형왕릉 탐방
글쓴이 : 夢餘香 원글보기
메모 : 가락국의 마지막 王 - 구형왕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