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세조때의 '조-명' 국경선은 어디인가?...카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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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세조 4년 무인(1458, 천순 2)10월 30일(갑신) /
평안도·황해도 도체찰사가 올린 사은하는 전문 /
평안도·황해도 도체찰사 신숙주(申叔舟)가 전문(箋文)을 올려 사은(謝恩)하였는데, 그 전문은 이러하였다.
"...(전략)...신이 지금 변방(邊方)을 순회하고 명령(命令)을 펴서, 여러 진수(鎭戍)를 편력(遍歷)하고,
연강(沿江)을 따라 내려와 이미 안주(安州)에 이르렀는데,
가만히 보니 장백(長白) 이남(以南)의 산세(山勢)가 산만(散漫)하여 적로(賊路)가 종횡(從橫)으로 나 있고,
또 요심(遼瀋)과도 연접하여 예로부터 대적(大敵)이
오는 것이 이 도(道)를 경유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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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세분해서 살펴보면...
1) /연강(沿江)을 따라 내려와/...
===> 변방(邊方)을 순회하던 신숙주가 강을 따라 내려왔다 했으므로 아마 이 강은
압록강이거나 두만강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래 2)에서 언급하는 '안주(安州)'와 가까운 강은 압록강으로 보아야 할 것 같군요.
2) /이미 안주(安州)에 이르렀는데,/...
===> '안주 [安州]'를 네이버 어학사전을 찾아보니.../
평안남도 안주군에 있는 읍. 청천강에 면한 수륙 교통의 중심지로 농산물의 집산지이며, 탄광으로도 유명하다.
군청 소재지이다./라고 했으므로 신숙주는 대략 兩界중 평안도 쪽에 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위의 1)에서 따라 내려온 연강(沿江)은 아마 압록강이었을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군요...
3) /가만히 보니 장백(長白) 이남(以南)의 산세(山勢)가 산만(散漫)하여/...
===> 신숙주가 '안주(安州)'에 이르러 '가만히 보니' 여러 산들이 보였는데
신숙주는 이 산들을 '장백(長白) 이남(以南)의 산'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장백(長白)'을 일단 '천지가 있는 백두산'이나 함경도의 '장백산으로 본다면 신숙주가 있는
'안주(安州)'와는 너무 동떨어진 언급이 되는 것 같고...
이 '장백(長白)'을 저 압록강과 두만강 의 북쪽에 길게 뻗은 '장백산맥'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그 지리적 위치가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군요...
그리고 또 '산세(山勢)가 산만(散漫)'하다 했으므로 험준하거나 첩첩산중이라고는 보기 어렵고
대략 띠엄띠엄 분산되어 있다는 것이어서 대략 평지에 듬성듬성 산들이 흩어져 잇다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래 4)에서와 같이 적군들이 종횡무진 침투하기 쉽다고 본 것 같군요...
4) /적로(賊路)가 종횡(從橫)으로 나 있고,/..
===> 일단 '안주(安州)'는 압록강 이남의 평안도로 보아야 하는데 적군들이 다니는 길[즉, 적로(賊路)]이
사방으로[즉, 종횡(從橫)] 나 있다는 것은 또 무슨 말인지? 영 납득이 가지 않는군요...
세조 당시에 조선의 국경 수비력이 아주 허술했다고 하더라도 좀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5) /또 요심(遼瀋)과도 연접하여 예로부터 대적(大敵)이 오는 것이 이 도(道)를 경유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 그런데 신숙주가 '안주(安州)'에 이르러 쳐다본 '장백(長白) 이남(以南)의 산들'이 띠엄띠엄(?)
'산만(散漫)'할 뿐더러 이 지역이 '요심(遼瀋)'과 연접되어 있다고 했으니...
'요심(遼瀋)'이라함은 '요양과 심양'으로서 지금의 요하강변에 잇는 지명이어서 분명 현 압록강과 요동반도를
넘어서에 있는 곳이어서 영 여러 지표지명들이 뒤죽박죽되어 버리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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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위의 내용들을 정리하면...
신숙주는 분명히 '조선의 변경(압록강)'을 순찰한 뒤 강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와서
'조선 영토 속인 안주(安州)'에 도착하여 주변의 여러 산들이 듬성듬성 보이는 넓은 광할지가 보이는데
이 산들을 '장백(長白) 이남(以南)의 산'이라고 하였고
또 그 산들이 요하강가에 있는 요양과 심양에 가깝다고 했습니다...
즉, 이 기록은...'조선의 변경(압록강)'보다 '장백(長白) 이남(以南)의 산'과 '요양과 심양'이
더 남쪽에 있다는 것으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어서 참으로 혼란을 주고 있습니다.
다만, '장백(長白) 이남(以南)의 산'이라고 했으니 정작 '장백(長白)'은 굳이
'조선의 변경(압록강)'보다는 남쪽이 아닐 수는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여기서 좀 여러 가능성들을 살펴보겠습니다.
1) 현 요하는 과거에 '압록강'으로도 불린 적이 있다.
2) 현 만주의 평정산 부근에 과거에 '백산(白山)'이라는 산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 산은 그리 높지는 않지만
비교적 옆으로 길게 뻗어 있어서 이 산을 '장백산(長白山) 또는 장백(長白)'이라고 했을 가능성도 있다.
3) 요양과 심양 부근은 비교적 광활한 지역이어서 이 지역에 야인들이 항상 종횡무진으로 준동하여
출몰하였던 기록들이 많이 있어서 이를 '적로(賊路)가 종횡(從橫)으로 나 있다'고 표현했을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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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가정을 하고 보니....
신숙주가 시찰한 '조선의 변경(압록강)'은 현 압록강이 아니고 현 요하에 가까운 지역일 수도 있으며
신숙주가 도착한 '안주(安州)'는 현 요동반도 어디쯤 되는 것 같고, '적로(賊路)가 종횡(從橫)'으로
나있는 '장백(長白) 이남(以南)의 산세(山勢)'도 현 요동반도의 이북일 수가 있다고 보입니다...
즉, 조선 세조시대의 조-명 국경이 현 '압록강-백두산-두만강'이 아니었고
'현요하-만주평정산-흑룡강'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입니다...
어떻게들 생각되시는가요? 혹시 틀린 곳이 있으면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저없이 즉시 시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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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표현 속에 진중함이 느껴지는군요... 조선초 조선.명과의 국경이 명확히 밝혀지는데 크게 기여할것으로 보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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