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큰동산 역사뜨락/제주도 향토사

[스크랩] 2. 元 지배 이후의 대표적 민란 다. 목호(牧胡)의 난과 제주민

제주큰동산 2013. 9. 20. 20:35

 

 다. 목호(牧胡)의 난과 제주민

 

  목호는 원에서 제주도 목장에 파견하여 목마에 종사케 했던 몽고인이다. 그들이 반란을 일으킬 때 당시 탐관오리의 침탈에 시달리고 있던 도민을 꾀어 난에 합세시켰다. 이와 관련하여《고려사(高麗史)》열전 임박전(林樸傳)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고 있다.

 「(공민왕) 16년(1367)에 (임박을) 제주선무사로 삼았다. 임박(林樸)이 제주에 이르러 만호(萬戶)에게 이르기를, “몽고의 달달목자(達達牧子)가 반발하기 좋아하니···(중략)··· 또 왕자·성주에게는 “(중략) 역대 임금이 그대들을 대우함이 심히 후하였으니, 자네들은 마땅히 각기 한 마음으로 조정을 받들어 목자와 더불어 난을 선동하지 말라”하니 성주·왕자 및 군민이 모두 부복하여 “감히 명에 쫓지 않겠습니까”하였다. 이에 앞서 선무하러 온 자가 대개 탐폭하여 재물을 제멋대로 거두어 들여 백성들이 이를 괴롭게 여겼는데, 목호가 이들을 꾀어 자주 반란을 일으켰다.」

 

  이상에서 본다면 당시 토호 세력도 목호의 난에 합세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으며 게다가 관리들의 학정에 견디다 못한 백성들이 목호의 난에 가담하는 암담한 상황이었다. 이에 앞서 제주인들은 고려의 관군과 삼별초 사이의 공방전에서 삼별초를 도와 관군을 패배시킨 바가 있었는데 이때 도민이 삼별초와 합세하여 도운 이유는 삼별초군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경래관의 탐학에 대한 반발과 그들의 의식 수준의 성장에 따른 행동의 결과로 생각된다. 또한 목호의 난에 제주민이 가세한 이유도 외세 지배하에서도 계속된 탐관오리의 침탈에 대한 제주인의 고려 조정에 대한 반발 의식이 표출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당시 일어났던 목호의 난을 정리하여 도표로 작성하면 다음과 같다.

 

연    대

주동자

원  인

피  해  자

비 고

서기

년/월

1356

공민왕

5/10

加 乙 赤

忽 古 托

배원 정책

구토수복정책

都巡問使 尹時遇

牧 使  張 千 年

判 官  李 陽 吉

원의문책

1362

11/8

肖古禿不花

石迭里必思

제주도 귀속

문  제

萬 戶  朴 道 孫

원에귀속

1372

21/4

石加乙碑

肖古道甫介

명의 마필

 요  구

揀選御馬使劉景元 牧使兼萬戶李用藏

명에목호

정벌요청

1374

23/7

石迭里必思

肖古禿不花

觀 音 保

요구대로 말을

보내지 않음

최영의

목호토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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