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북성조(禾北城操)
숙종28년(1702) 10월 29일(양력 12월 17일) 순력(巡歷). 화북진(禾北鎭)에 소속된 성정군(城丁軍, 성을 지키는 군대)의 군사훈련 모습. 성벽을 따라 군사들이 정렬해 있고 성안에도 동서로 마주보는 대열을 이루고 있는데 대열에 한 사람씩 나팔수가 보인다. 서쪽 대열의 뒤에는 안장을 얹은 말 4마리가 있다. 목사는 중앙 북쪽의 건물(환풍정) 안에서 이들을 지켜보고 있다. 일행은 이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당시 화북진의 조방장(助防將)은 이희지(李喜枝)이며, 성정군의 규모는 172명이다. 군대를 점검하고 군기의 수효도 확인했다.
화북진과 포구의 자세한 지형과 성의 위치, 그리고 성내의 건물 배치뿐만 아니라, 민가(民家)의 위치 등이 자세히 그려져 있다. 성 남쪽 민가 중에 기와집이 두 채 보이는 게 이채롭다. 서남쪽에 碑閣이 그려져 있으나 비의 내용이나 현존 여부 등은 알 수 없다. 환풍정(喚風亭)을 중심으로, 막사나 무기고 같은 건물은 대부분 북쪽으로 몰려 있어 위로는 훈련장이나 집합 장소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화북진은 조선시대에 군대를 주둔시키던 부대이다. 숙종4년(1678)에 최관(崔寬) 목사가 성을 쌓았는데 그 길이가 303보(=606척, 187m)이며 높이는 11척(4m 정도) 너비는 약 1m이다. 동,서 2문을 두었다. 서쪽의 성문은 포구와 연결되어 있었다. 숙종25년(1699) 남지훈 목사가 조방장을 두면서 수전소와 방호소를 겸하는 성이 되었다. 이에 따라 군무를 집행할 창고와 군기고(息波庫), 환풍정(喚風亭, 객사 3칸) 등을 건립하였다. 환풍정에서는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조방장 이하 뜰에 모여서 망궐례를 행했다.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후풍하던 곳이기도 하다. 그 뒤 화북진성에는 공사선(公私船)을 점검하는 영송정(迎送亭)이 만들어졌다. 화북포는 제주목의 육지 출입 포구로 화북진은 처음 수전소(水戰所)였다가 나중에 진(鎭)으로 변경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화북포는 목(牧)을 보호하는 수전소로 수전에 대비하여 전선이 항시 대기하였으며 아울러 이형상 목사는 화북포구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하였다. 한편 지금의 무기고와 같은 息波庫를 두어 무기를 보관하였으며 당시 도내에서는 그 규모가 가장 커서 화북수전소의 중요성을 짐작하게 한다. 식파고에는 交子弓 45장, 長箭 45부, 片箭 75부, 環刀(還刀?) 9자루, 地字銃 3문, 玄字銃 6문, 宙字銃 10문, 勝字銃 8문, 화약 75근, 水鐵丸 9천개, 鐵甲 3부, 鐵冒 3부 등을 보관하였다.
화북은 제주목의 내륙 출입포구였기 때문에 왕명을 받든 사신을 환송, 접대할 시설이 필요했다. 숙종 25년(1699년)에 남지훈 목사는 3칸짜리 객사였던 환풍정을 건립하였고, 북성 위에는 망양정을 두었다. 성 안에는 진사(鎭舍, 3칸), 공수(供需, 3칸), 사령방(使令房, 1칸), 마방(馬房, 4칸), 무기고 등이 있어서 군인들이 사용할 무기와 곡식이 보관되어 있었다. 헌종14년(1848)에는 장인식 목사가 환풍정을 개건하고 상량문을 지었다고 하지만 남아 있지 않다. 북성 위에는 망양정(望洋亭)이 있었다.
동서 120m, 남북 75m의 타원형으로 전체적인 지형은 남고북저(南高北低)이다. 동문과 서문의 흔적은 없다. 현존하는 성벽의 길이는 187m이며 높이는 최고 4.3m 최저 3m이다. 제주도기념물 제56호로 지정되어 있다.
건입동 산지항이 축조되기 전에는 화북포구는 전남 강진과 영암, 해남 등과 주를 잇는 중요한 관문이기도 했다. 이 포구를 통해 쌀과 소금 등 생활필수품이 들어왔으며, 관리들과 유배인도 들어왔다. 1641년 8월 5일부터 8월 19일까지 광해군의 시체를 모신 곳이기도 하다. 서재 임징하, 추사 김정희, 면암 최익현 등 유배인들도 이 포구로 들어왔다.
화북진은 폐진한 후에 1926~1971년까지 화북국민학교로 사용되었으나, 화북초등학교가 현재의 일주도로변으로 이설된 후에는 목재사 등으로 쓰이다가 지금은 청소년 문화의 집이 들어섰고 서쪽 마당은 게이트볼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북쪽과 서쪽의 성벽은 그대로 남아 있으나 다른 곳은 거의 무너져 버렸다.
* 수전소(水戰所) : 제주도에는 수전소가 열 곳에 있었는데 화북․조천․어등․애월․명월․열운․서귀․모슬․색․우포이다. 제주도의 방어시설로는 3성․9진․10수전소․25봉수․38연대가 체계를 갖추고 있었는데 진과 수전소는 다 같이 ○○진으로 불렀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한 곳에 진과 수전소가 함께 있는 곳도 있었으니 조천․애월․서귀 등이다.
참고문헌
제주시, 탐라순력도 영인본. 1995.
제주도, 제주의 문화재. 1982.
제주도, 제주의 방어유적. 1996.
현용준, 『제주도 전설』
이원진, 탐라지
김석익, 탐라기년
화북마을지
「화북포구에서 제주城안까지 옛 길을 걷다」 안내 자료. 2009.
한국고전종합데이터베이스
제주타임스 2006년 1월 4일 장덕지 교수 글
제주신문 1995년 4월 19일, 1995년 5월 3일, 1995년 5월 24일, 1995년 6월 28일
제주시정소식 2002~2003. 김창집 글『신탐라순력도』
제민일보 2006년 11월 15일
http://www.jejuhistory.co.kr/(고영철의 역사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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