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승보시사(陞補試士)
제주의 경우는 인조17년(1639)부터 실시하였는데, 고시관 3원(員은 9품 이상의 관료에게 붙이는 칭호)이 매년 2명을 뽑아서 소과 복시(覆試)의 응시자격을 주었다. 후일 고시관, 시취생(試取生)의 수는 여러 차례의 변화를 겪기도 한다.
관덕정 중앙 상좌에 시험관인 목사가 홍삼(紅衫) 차림에 사모(紗帽)를 쓰고 엄숙한 분위기로 앉아 있다. 목사는 다른 사람보다 2배 정도의 크기로 그렸다. 그 약간 전면의 좌우에는 부시관(副試官)과 참시관(參試官)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고개 숙여 앉아 있고, 시험관 오른쪽 뒷면에는 사동(使童)이 엎드려 있다. 시험관을 중앙에 두고 관덕정 좌우에는 6방 관속들이 부동자세로 서있는데, 모두가 칼을 차고 있는 모습이다. 그 중에는 통인(通引)이 좌우에 각각 1명씩 서있다. 계단 아래쪽 왼쪽에는 의관을 차려입은 유생 3명이 꿇어앉아 있고 오른쪽에는 주안상이 마련되어 있는데 그 옆에는 한 선비가 서 있다.
관덕정 앞뜰에는 큰 차일(遮日)을 쳐놓았으며 정면 좌우에는 시제(試題)가 4개의 대막대기 끝에 저마다 걸려있다. 그 앞에 깔아놓은 초석에는 붉은 옷을 입은 12명의 응시자가 한 줄로 나란히 앉아 과거에 응시하고 있다. 응시자 좌우편에는 각각 녹기(綠旗)를 든 기수 4명과 집장사령(執杖使令) 4명이 배치되어 있다. 좌측 뒷면에는 고수(鼓手)가 대령해 있고 관덕정 좌측 전면의 높은 게양대에는 사자기(獅子伎)가 걸려 있다. 관덕정 앞 왼쪽에는 포정루(布政樓)가 있는데, 2층 다락에 종과 북을 매달아 놓고 있다. 그 옆에는 군기청, 진무청, 기생청, 군기고, 병고, 북과원 등이 그려져 있고 전면 좌우에는 긴 집채인 회랑(回廊)이 그려져 있다.
1702년에는 윤6월 17일부터 3일간 試取하여 응시인 12명, 거둔 답안지도 12매였으며 최종적으로 시(詩), 부(賦) 각 1인씩 2명을 시취하였다. 또한 중앙 전면에는 물림폭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다. 이 물림폭은 과녁 뒤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설치되는 휘장으로 사수(射手)가 150보 전방의 과녁을 향하여 활을 쏠 때 과녁을 조정하기 쉽게 만들어놓은 일종의 보조기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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