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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법화사 출토유물 - 기와

제주큰동산 2013. 9. 20. 21:10

(2) 기와

 

  기와는 크게 막새와 평기와로 나뉜다. 막새기와로는 운봉문(雲鳳文), 귀면문(鬼面文) 2종이고, 암막새로 운룡문(雲龍文), 당초문, 연화문 그리고 양각이형 4종이 있다. 평기와의 문양은 수지문 7종, 격자문 2종, 복합문 18종이 있다.

 

 

 

 

(가) 명문기와

 

‘大’字 명문기와 : 가장 많은 출토량을 보이고 있다. 이 기와는 수지문이나 복합문 중앙에 상하부로 직사각형을 음각한 후 그 안에 글자가 배치되고 있다. 이는 ‘順’ ‘寅吉’ ‘高內’ 명문기와에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大’字瓦는 ‘大天’이라는 글자로 제주시 삼양동 원당사지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万戶’ ‘戶高口德’字 명문기와 : 제주목관아지(제주시 삼도 1동)에서 발견되는 ‘同願此處官萬戶兼牧使’ 명문기와와는 대조를 이룬다. 만호의 ‘萬’자가 서로 다르고 글씨체 자체가 관아지의 것은 가늘고 세련되나 법화사지의 것은 두텁고 매우 거칠다.

  제주도에 만호부가 설치된 것은 고려 충렬왕 27년(1301)이며 이 해에 목사도 파견되며 이때부터 제주도는 만호와 목사가 겸직하게 된다. 조선 성종 이후 만호는 하급군관으로 몰락하면서 목사와 겸직할 수 없게 되므로 만호라는 명칭은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에 해당하는 시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戶高口德’의 명문은 성씨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高內’字 銘瓦 : 제주도 옛 사찰과 제주목관아지에서 확인된 바 있는데, 이는 마을 지명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始重創十六年己卯畢’字 銘瓦 : 이 기와는 법화사의 연혁을 파악할 수 있는 절대연대 자료로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세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 “(□□년에) 중창을 시작하여 16년 만인 기묘년에 마쳤다.”

ⓑ “(□□왕□□년에) 중창공사를 시작하여 (□□왕) 16년 기묘년에 마쳤다.”

ⓒ “(···<年號名>년에) 중창을 시작하여 (□□왕) 기묘년에 마쳤다.”

 

  여기에서 ⓐ의 해석은 중창 자체가 始에 걸려 문법상 구조에서 해석상 무리가 있고, ⓑ의 해석은 □□왕의 재위 16년이 기묘년과 일치하는 경우를 찾으면 된다. 조선시대 고종 16년 기묘 즉 1879년 하나뿐이다. 그러나 이 시기에 해당하는 유물이 발견되지 않으며, 이원진 <탐라지>(1651)에 이미 ‘今廢寺’라고 쓰여 있어 이 연대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의 해석은 이에 해당하는 연호는 至元 16년 기묘, 즉 원 세조 16년이며 고려 충렬왕 5년(1279)에 해당한다. 이 명문은 제주에 원의 탐라총관부가 설치되는 충렬왕 원년(1275) 이후 어떤 형태로든 이곳 법화사에 건물 중창과 관련된 사실을 파악하는 좋은 자료이다.

 

 

사진 : 법화사 기와, 제주큰동산, 2010.11.14.15:22, 제주 서귀포시 하원동 

 

 

출처 : 제주큰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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